주목받는 경영권 상속 준비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48)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그룹의 지배회사 중 하나로 급부상한 ‘한국도서보급’이 주목을 받고 있다. 태광그룹의 주력 업종인 화학이나 섬유, 방송, 금융과 전혀 관계없는 업종인 데다 100% 가족기업인 한국도서보급이 이 회장의 그룹 내 경영권을 확고히 다지는 것은 물론 향후 후계구도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국도서보급, 금융 부문 지배회사로
태광그룹은 2003년 한빛기남방송(현 티브로드기남방송) 등을 통해 두산그룹이 보유한 한국도서보급 지분 92%(18만4000주)를 주당 1만6000원에 약 30억 원을 들여 인수했다. 이후 추가로 3%를 사들인 한빛기남방송은 2005년 2년 전 인수 때와 같은 가격에 지분 95% 전체를 이 회장과 아들 현준 군(16)에게 넘겼다. 태광 측은 이후 소액주주들이 보유한 나머지 5% 지분도 사들여, 현재 이 회사 지분은 이 회장이 51%, 현준 군이 49%를 소유한 가족기업이 됐다.
이 회장이 한국도서보급을 그룹의 새 지배회사로 만드는 작업에 나선 것도 이즈음이다. 한국도서보급은 2006년 그룹 계열사인 피데스증권(현 흥국증권) 지분 대부분을 사들인 데 이어 올해 9월 주력사 가운데 하나인 대한화섬 지분 16.74%(22만2285주)를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태광산업으로부터 148억여 원(주당 6만3100원)에 사들였다. 이로써 한국도서보급은 대한화섬의 1대 주주가 됐다. 대한화섬은 흥국생명 10.3%, 고려상호저축은행 20.2% 등 그룹 내 주요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한 지배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태광산업이 대한화섬 지분 전량을 한국도서보급에 넘길 때 30%에 해당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 회장이 회사에 상당한 손실을 끼쳤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 경영권 강화, 후계구도 핵심 역할
태광그룹이 한국도서보급을 대한화섬과 금융계열사의 지배회사로 키우려고 하는 것은 회사 자체의 규모가 크지 않아 큰돈을 들이지 않고 소유할 수 있는 데다 상품권 유통사업으로 현금을 마련하기 쉽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서보급이 외부감사 대상 기업이 아니어서 부채, 자산, 실적 등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도 한 이유로 꼽힌다.
한국도서보급을 정점으로 한 금융 부문 지배구조 개편에는 이 회장 가족의 경영권 강화는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아들 현준 군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데 따른 상속세를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 회장이 51%의 지분을 갖고 있는 한국도서보급의 지분을 2%포인트만 낮추면 아들에게 그룹의 금융 부문 경영권을 손쉽게 넘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2006년 같은 방식으로 각각 티시스(정보기술 기업), 티알엠(건물관리 업체) 지분 49%를 현준 군에게 물려준 뒤 이들을 지배회사로 키우기 위해 태광산업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 태광산업은 복수유선방송사업자(MSO)인 티브로드홀딩스와 큐릭스홀딩스를 보유하고 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