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들으며, 요즘 학생들이 시험으로 선발하는 방식에는 불만이 있으나 추첨으로 정하면 불만이 없다는 얘기가 참 신기하였다.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예전에는 골프 게임 내기를 할 때 점수에 따라 이기고 지는 식으로 정했지만 요즈음은 점수가 아니라 뽑기가 대세라고 한다. 그래서 골프도 연습장 가서 실력을 연마하기보다는 제비 뽑는 연습을 더 열심히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린다.
시험보단 뽑기에 열심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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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학창시절에는 과거제도의 장점이 인재의 고른 등용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양반 자제만이 출세하는 현실을 지양하고 빈부나 신분 격차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통하여 고루 선발될 수 있는 기회균등을 위하여 과거제도가 실시되었다고 했다. 또 현실적으로도 소위 힘없는 집안에서 자신이 노력한 결과 시험을 통하여 공무원이나 고위직에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전에는 과거였고 근래에는 고시였다. 그렇다면 과연 실력을 기준으로 선발하는 시험 또는 고시는 우리 사회의 공정을 해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나마 공정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기준일까.
최근 젊은층 사이에 열풍 현상까지 빚는 TV 프로그램으로 슈퍼스타K라는 신인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100만 명이 넘는 응시자에서 출발하여 단 1명을 선발하는 치열한 과정을 보여준다. 노래 잘하는 사람을 선정하는 프로그램이니까 당연히 매회 다른 조건에 따른 노래 부르기로 대결을 하고 심사위원들이 냉정하게 점수를 매긴다.
재미있는 점은 TV를 통하여 출연자들은 노래 실력을 적나라하게 검증당하고 이를 평가하는 심사위원들마저 시청자들에게 가차 없이 평가받는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더하여 대국민 문자투표라는 방식의 시청자 투표가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넘어 당락을 좌우한다. 가끔 실력이 월등한 출연자가 시청자들의 반대몰표로 탈락했다는 원성이 일기도 한다. 이에 대해 심사위원은 그러니까 시청자가 투표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매회 재미와 뜨거운 관심과 함께 때론 감동을 선사한다.
이 프로그램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출연자들의 노래 대결도 볼만하지만 만천하에 훤히 드러나는 평가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대단히 흥미로웠다. 마치 정치인들의 유세와 토론회, 투표 혹은 인사청문회를 연상케 해 그와 대비해서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보며 사실 정치도 행정도 사법도 그 분야의 치열한 경쟁과 공정한 판단으로 어필할 때 그처럼 뜨겁게 국민을 감동시킬 수도 있을 텐데 왜 늘 여기엔 시니컬한 양비론만 남을까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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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실력이다. 가수가 되려면, 정치인이 되려면, 장관이 되려면 일단 그 분야에서 요구하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대국민 문자투표도 무시할 수 없는 게 또한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위장 전입이, 군대 면제가, 부동산 투기가 지적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노래 잘하는 이를 선발하는 데서도 그와 같이 치열한 실력 검증을 거치도록 하는데 한 국가를 책임지고 이끌어 갈 인사들이 정작 필요한 정치 실력, 행정 실력 그리고 리더십의 경쟁, 이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냉정한 평가, 그리고 그 심사위원들의 심사에 대한 적나라한 평가는 생략한 채 대국민 문자투표에만 온통 치중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대비되었다.
김영혜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yhk888@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