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키우기 힘들다∼용돈 좀 많이 줘라!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송파동 송파근린공원에서 60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어르신 큰소리 지르기 대회’가 처음 열렸다. 17명의 참가자는 “영감, 사랑해” “얘들아, 외식 좀 자주 하자” 같은 개인사부터 “월급 좀 올려 달라” “말로만 경로 말고 행동으로 보여줘라” 같은 뼈있는 얘기까지 5초간 외쳤다. 사진 제공 송파구
“영감! 사랑해애애애….”
소리는 귀가 찢어질 듯 크게 울려 퍼졌다. 김 씨가 무대에 올라간 시간은 5초뿐이었지만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관객들은 “진짜 우렁차네”라며 환호했다. 김 씨의 목소리 크기는 104dB(데시벨). 수많은 남성 참가자들을 제치고 당당히 2등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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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지르니 속이 후련”
그러나 무대에서 내려온 김 씨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50년 만의 고백을 참 후련하게 했다”며 웃었다. 그의 남편은 말없이 흐뭇하게 김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르신 큰소리 지르기 대회는 송파구가 주최한 경로의 달 행사 중 하나로 올해 처음 시작됐다. 만 65세 이상 노인들이 살면서 느끼는 스트레스, 하고 싶은 말 등을 5초간 크게 말하는 게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사람들 많은 데서 누가 힘들게 고함을 지를까. 하지만 반응은 예상외였다. 지난주 열린 예선전에는 40명 가까운 송파구 거주 노인들이 참여했다. 구는 정상 혈압(80∼120)의 참가자들 위주로 예선 심사를 했다. 그러나 혈압이 150이나 되는데도 “꼭 나가고 싶다”며 5번이나 재측정한 노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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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져도 외치고 싶은 그들
이날 1등은 아들과 며느리를 향해 “얘들아, 손자 키우기 힘들다”라고 외친 김용석 씨(73)가 차지했다. 소리 크기는 무려 106dB. 퇴직 후 맞벌이인 아들 부부의 손자를 돌보는 김 씨는 “아침에 밥 먹여 유치원 보내는 데 1시간이 걸린다”며 “손자 키우는 게 얼마나 고달프면 우승까지 했겠느냐”고 웃었다.
행사를 기획한 안재승 송파1동 주민생활지원팀장은 “자식 눈치, 며느리 눈치 보느라 말도 잘 못하는 동네 어르신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