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제현장을 뛸 때 가능성이 반 정도만 되면 속된 말로 ‘질렀다’. 조금 고상한 말로 ‘리스크 테이킹’이 될 터이다. 될 것인지 말 것인지 이분법적 관점에서 보면 50% 가능성이나 99% 가능성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건 역량을 좀 더 쏟으면 된다는 긍정의 시그널이다. 단 언제 리스크 테이킹을 하느냐에 따라 보상의 크기는 달라진다. 99%까지 여건이 성숙될 때를 기다려 도전하면 실패야 안 하겠지만 ‘리턴’은 별로다. 남보다 먼저 과감히 지르려면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수다. 아무 준비 없이 그냥 오기와 감으로 지르는 리스크 테이킹은 백전백패다.
디지털 시장 초단위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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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휴대전화, TV, 디지털카메라 등에서 세계강국을 제압했다. 그 회사 제품 한두 개라도 갖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었던 모토로라, 소니, 필립스, 코닥 같은 회사들을 제친 것이다. 지금부터 50년 전인 1960년, 국민소득 90달러도 안되는 세계 최빈국(最貧國)의 하나였던 우리가 말이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일이다.
그러나 좀 찬찬히 보자. 디지털 코리아는 혁신 주도의 산물이 아니라 응용 주도의 열매다. 창조적 제품이라기보다는 재창조적(Re-inventional)인 제품에서 성공한 결과다. 솔직히 말하면 기존 제품에 디지털기술을 합성해 세계의 벽을 뚫고 나간 것 이상은 아니다. 한국은 혁신 주도자가 아니라 ‘재빠른 추종자’였던 셈이고, 그런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성공을 자축하는 동안 혁신 주도자들은 저 멀리 달아나고 있다.
디지털 경쟁의 시장상황은 초단위로 변한다. 기존에 존재하던 기술과는 전혀 다른 비연속 기술이 아니면 디지털 코리아를 지탱해갈 수 없다. 그렇다고 반드시 첨단일 필요는 없다. 예컨대 신흥개발국 시장을 공략할 기술이 너무 첨단이면 오히려 부담스러울 것이다. 혁신을 지향하되 시장상황의 변화와 템포를 맞추는 리듬 감각이 필요하다.
전기자동차, 지능형 스마트그리드, 한국형 바이오신약, 탄소 소재…. 우리가 준비하는 신기술은 너무도 많다. 하지만 이 신기술 분야에도 선진국들이 우리보다 먼저 출발했고, 지금 그들은 저 멀리 뛰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우리는 미래 신기술 분야에서 그들을 재빨리 추격할 준비가 돼 있는가. 무서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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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 기술로 세계 1등 나서야
지금 잘하고 있는 자동차 조선 반도체 통신 원자력 기술을 기반으로 각종 미래 신기술을 잘 엮어 우리만의 독창적인 융복합 기술로 기존의 주력 산업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자. 이 융복합 기술을 세계 최고로 만들면 개별 미래기술도 상승작용을 통해 1등에 오를 가능성이 열린다. 이 과정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하는 효과도 얻게 될 것이다.
한국만이 잘할 수 있는 기술적 위치를 발굴해 나간다면 꼭 최첨단이 아니라도 좋겠다. 한국적 테마와 스토리가 있는 기술로 치고 나가자. 선진국에서 한번 살고 싶지 않은가?
황창규 객원논설위원·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장 cghwang@mk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