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패션 그룹, 와인에 빠지다
▲ 페라가모가 만드는 ‘일 보로’.
세계적인 명품 그룹 페라가모에서 와인도 생산하고 있는 사실을 아는가.
페라가모 그룹은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일 보로’(Il Borro)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있다. 일 보로는 원래 메디치 가문이 1860년부터 와인을 생산한 마을의 이름. ‘개울’이라는 뜻으로 중세의 느낌을 여전히 내고 있는 고요한 마을이다. 그런데 이곳에 ‘필’이 꽂힌 페라가모 그룹은 1993년 마을의 땅을 통째 사들였다. 명품 그룹답게 통이 다르다. 그리고 포도밭을 새로 일구기 시작했다.
▲ 구찌의 모회사 PPR이 만드는 ‘샤토 라투르’.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쟁쟁한 명품 그룹이 와인을 만드는 곳은 비단 페라가모 그룹만은 아니다.
구찌, 보네가 베네타, 입생 로랑의 모회사인 프랑스 유통그룹 PPR은 ‘샤토 라투르’를 갖고 있다. PPR 창업자인 프랑수아 피노 회장은 1963년 영국으로 넘어갔던 소유권을 1993년 프랑스로 되찾아온 인물. 그는 영국에서 샤토 라투르를 매물로 내놓았다는 소식을 들은 후 48시간도 안 돼 자신이 와이너리를 사야겠다는 결심을 했단다.
피노 회장은 여러 명품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지만(그 유명한 크리스티 옥션도 그의 소유다) 특히 샤토 라투르를 아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인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최고의 와인을 만든다는 자부심 때문 아닐까.
▲ 토즈가 생산하는 ‘피아니로시’. 라벨에 빨간 점이 인상적이다.
신치니는 토스카나 인근에 위치했지만 토스카나의 명성에 가려 진가를 드러내지 못한 마르케 지역 출신이다. 마르케 지역의 대표 품종은 산지오베제가 아닌 몬테풀치아노. 신치니는 피아니로시를 만들 때 꼭 몬테풀치아노 품종을 넣어줄 것을 요구했고, 이렇게 해서 몬테풀치아노의 풍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와인이 탄생했다.
피아니로시의 라벨에 그려진 붉은 점은 붉은 점토질 토양으로 이뤄진 포도밭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신치니의 와인에 대한 열정을 상징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신치니가 직접 말했던 것처럼 와인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기억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 샤토 라투르 와이너리의 입구.
스와로브스키 그룹도 아르헨티나 멘도사 지역에서 ‘노통’(Norton)을 내놓고 있다. 스와로브스키 그룹의 오너인 게르노트 랑게스 스와로브스키는 여행 도중 우연히 노통 와이너리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와이너리의 일부를 샀다. 그리고 얼마 후 나머지 돈도 모두 지불하고 전체를 사들였다.
따사로운 태양과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의 매력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와로브스키는 1989년 아르헨티나에서 처음으로 와이너리를 매입한 외국인이 된다.
LVMH 그룹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모엣 헤네시’를 만든다. 뿐만 아니라 ‘돔 페리뇽’ ‘뵈브 클리코’도 역시 생산한다. 상류층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루이 비통은 주 고객이 고급 주류를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 1987년 최고급 샴페인과 코냑을 생산하는 모엣 샹동, 헤네시와 합병하면서 이름을 현재의 LVMH로 바꿨다.
글·이길상 와인전문기자
사진제공·나라식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