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석 씨 ‘한국등산사’에서 밝혀
한국 산악계의 산 증인 손경석 선생과 그가 최근 펴낸 한국 등산사.
현재 인수봉 바윗길은 60여 개 있다. 그러나 그 루트는 1900년대 이후 전문 바위꾼들이 낸 길이다. 대부분 처음 길을 튼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렇다면 언제 누가 맨 먼저 인수봉에 올랐을까. 정답은 한국계 일본인 임무(林茂)와 당시 일본과 조선에서 근무했던 영국 외교관 아처이다. 이들은 1925년 10월 자일파트너로 인수봉 암벽을 올랐다. 그리고 그 증표로 명함과 기록내용을 빈 병 속에 넣어 인수봉 정상 바위 안에 넣어뒀다.
그 이후로 1930년대부터 인수봉은 많은 루트가 개발됐다. 손기정 선생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 후 당시 양정산악회원들과 함께 인수봉 암벽을 오르내리며 가슴속 울분을 삭였다. 손 선생은 이런 연유로 인수봉 부근 ‘白雲山莊(백운산장)’의 현판 글씨를 썼다.
그가 마침내 ‘한국등산사’(도서출판 이마운틴)를 펴냈다. 1990년대 내려고 했던 것이 거의 20년 가까이 늦어졌다. 정리해둔 카드자료만 수십만 장이 넘는다. ‘한쪽 귀는 가고 겨우 듣고 볼 수 있는’ 나이. 그 누가 뭐라 한들 그는 오직 산의 일부분으로서 살았다. 산은 그의 ‘영혼의 나침반’이었다.
그는 알피니즘을 추구한다. 상업등반을 꺼린다. 결코 히말라야 등반이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히말라야에 좀 다녀왔다고 어느 날 갑자기 산악행사에서 원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는 안 된다. 늙은 선배들에게 1940, 50년대 북한산은 곧 알피니즘의 세계였다. 14좌 등정은 훌륭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결국 한국 등산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뿌리를 알아야 자신을 알 수 있다. 그의 호는 ‘우산(又山)’ 즉 ‘또 산’이다. 어쩔 수 없는 산사람이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