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간 식물생태계 복구한 백록담 가보니
《간간이 햇빛이 스며드는 연못 주변은 푸른빛으로 넘실댔다. 5일 한라산국립공원 백록담. 화구벽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분화구에서 먹이를 찾는 노루들이 인기척에 놀라 “컹∼ 컹∼” 소리를 지르며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며칠 동안 계속 비가 내려 분화구에 물이 가득했다. 평소 보기 힘든 진풍경이었다.》
○ 희귀, 특산식물의 향연
등산객의 발길 등으로 식생이 무너진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 분화구 일대가 복구작업 끝에 생태계를 회복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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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객 발길 등으로 식물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진 곳에 복구 작업을 마무리한 지 10여 년 만에 원래 모습을 찾은 것. 서벽 방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식생 복구가 눈에 띄게 나아졌다. 한국특산종인 구상나무는 짙은 보랏빛 열매를 맺은 채 위용을 뽐냈고 산개버찌나무, 좀고채목, 털진달래, 들쭉나무의 녹색 잎이 절정에 달했다.
○ 백록담 식생 복구의 교훈
백록담 남벽과 서벽 지질은 연한 회색빛의 한라산 조면암. 동쪽 정상의 현무암에 비해 토양 응집력이 작아 조그만 힘에도 쉽게 무너진다. 여기에 등산객이 몰리면서 훼손이 빨라졌다. 정상부 훼손면적은 4만320m²(약 1만2190평)에 이르렀다. 국립공원 측은 자연휴식년제를 도입해 1994년부터 남벽정상 출입을 금지하고 2000년까지 복구 작업을 했다. 18kg짜리 흙이 담긴 녹화마대를 훼손지에 깔았다. 호우와 강풍에 씻겨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길이 30cm가량의 나무말뚝을 박았다.
등산객 몰리며 4만㎡ 훼손, 출입통제 뒤 무너진 곳 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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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벽 복구공사 이후 2001∼2002년 백록담 순환로에 녹화마대 공법을 시행했다. 정상부 전체 복구공사 면적은 3만2040m²(약 9690평)로 전체 훼손면적의 79.5%에 이른다. 국립공원 측은 이후 복구공사를 중단했다. 나머지 지역은 자연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동벽에서 분화구 쪽으로 바위와 자갈 등이 흘러내린 지역은 그대로 뒀다. 인위적인 작용보다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판단했다.
제주도환경자원연구원 고정군 박사(식물학)는 “백록담뿐만 아니라 등산객 출입을 통제한 뒤 녹화마대 공법을 시행한 장구목 등산로도 토양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자생식물이 뿌리를 내렸다”며 “어렵게 복구에 성공한 만큼 앞으로 더는 훼손되지 않도록 장기 보존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지식물 먼저 뿌리내리자 특산식물도 보금자리 잡아
녹화마대 공법 이전에 쇠 그물망을 훼손지에 덮는 ‘엔카매트’ 공법 등을 도입했으나 실패로 끝나기도 했다. 녹화마대 공법을 도입하는 초기에 문제점이 생기기도 했다. 저지대의 흙을 정상으로 옮기는 바람에 흙 속에 숨어있던 씨앗이 발아하기도 했다. 대부분 고지대에 적응하지 못해 1, 2년에 사라졌지만 백록담 정상에 간혹 보이는 토끼풀은 당시 유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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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