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로 무대 옮긴 ‘파이의 시간’
갤러리에서 미술 작품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2인극 ‘파이의 시간’. 사진 제공 극단 작은신화
남자(장용철)는 “당신이 죽으면 내 고통도 끝날 줄 알았다”며 “난 정확히 겨냥해서 (사실상) 당신을 죽였다”고 고백한다. 여자(박소정)는 “분노가 우릴 살린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는 그전만큼 사랑할 수는 없을 거예요”라고 답한다.
갤러리 벽을 따라 배치된 25석가량의 의자와 그 앞에 방석을 깔고 앉는 보조석까지 60여 석을 채운 관객은 1시간여 분량의 연극을 지켜보며 연극의 주제를 다양한 미술작품으로 형상화한 무대세트 전체를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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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작품이 이렇게 극장이란 공간을 벗어나 다양한 공간으로 침투하는 현상은 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허드슨 강변의 보트 위, 선착장, 주차장, 공원 화장실까지 무대화하는 현상을 소개하며 “무대가 무대처럼 느껴지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도했다. ‘나이트 라이츠’란 연극은 뉴욕 소호의 주차장에 자동차를 몰고 온 관객들이 차 안에서 무선이어폰을 끼고 지켜보는 가운데 도심 성폭력 사건을 실제상황처럼 재현해 화제가 됐다.
유럽에선 대형 화물트럭의 짐칸에 관객을 태우고 도로를 주행하는 공연까지 등장했다. 다큐멘터리를 연극에 도입한 독일극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연극 ‘카르고 소피아 X’는 무선이어폰을 착용한 45명의 관객을 짐칸에 태우고 2시간 동안 실제 도로를 운행하며 트럭운전사들의 애환을 함께 체험하도록 한 독특한 형식실험으로 주목을 받았다.
권재현 기자 c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