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권력 과잉 행사와 타민족 배타주의
빈민층이 몰려 사는 파리 동북쪽 라쿠르뇌브 시청 앞. 8월 들어 주말이면 경찰의 ‘과잉 진압과 폭력’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린다. 지난달 21일 경찰이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를 단속하면서 임산부와 어린아이를 업은 여성을 강제로 도로 바닥에서 끌고 가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데 따른 것이다. 6일 집회에 참여한 한 프랑스인은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었다”며 “임산부나 노약자뿐 아니라 프랑스에 사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평등한 대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경찰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격앙했다.
7월 27일 파리 경찰청 운전면허국 사무소. 자국 면허증을 프랑스 면허증으로 교환하기 위해 오전 10시부터 5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외국인 10여 명이 모여 서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한 40대 영국 여성은 “두 달 전 면허증 교환을 신청하러 왔을 때도 6시간이나 기다렸다. 외국인 신청자들은 수가 적다는 이유로 계속 뒤로 미루고 프랑스인 민원부터 처리하다 보니 우리만 피해를 본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아프리카 출신 주재원이라는 한 50대 남성은 “외국인에 대한 그런 많은 행위가 프랑스적인 업무의 특수성이라는 말로 포장돼 넘어간다”고 말했다.
○ 반발하는 정부와 동조하는 국민
피에르 를루슈 유럽연합(EU)담당 장관은 유엔의 비판에 “2007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가입에 관한 EU 협약에 따라 이들 국가 출신자의 자유로운 이동에 대해 7년 동안 제한이 가해질 수 있다”고 맞섰다. 루마니아 불가리아 출신 집시들의 추방 조치가 EU 회원 국민의 자유로운 이동권을 제약하는 것이라는 비판에 대한 반박이었다. 집권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프레데리크 르페브르 대변인은 12일 라디오에 나와 “구치소에 있는 사람 중 10%는 외국인”이라며 “외국인 문제가 심각하다”고 언급했다. 경찰은 올 들어 불법 이민에 관여된 조직 122개를 적발해 처리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60%나 증가한 수치. 정부는 연말까지 최소 200개를 없앤다는 방침이다. 프랑스는 지난 한 해만 2만9000여 명의 불법 체류자를 추방했다.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달 6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9%가 불법 집시촌의 해체와 추방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과 인권단체는 물론이고 일부 여당 인사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대다수가 정부의 치안 강화, 불법 이민 철퇴 정책에 찬성하는 것은 조금 곱씹어볼 대목이다. 일각에선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이래 15년 넘게 우파 대통령 체제가 이어지고, 우파가 유럽을 지배하는 시대적 흐름이 대두되면서 프랑스 국민에게도 자연스레 유럽 민족주의 성향이 나타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통계상으로는 불법 이민과 범죄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EU 국경통제기구 FRONTEX는 올 6월 초 낸 보고서에서 “지난 한 해 EU 회원국의 국경을 불법으로 넘으려다 적발된 시도가 10만6200건으로 2008년보다 33%나 줄었으며 계속 감소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또 프랑스 범죄연구소의 2009년 범죄보고서에 따르면 시민들이 가장 피부로 느끼는 생활형 범죄인 ‘절도 및 기물 파괴 등을 통한 재산 침해’ 건수는 2004년 270만8934건에서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매년 감소해 지난해는 222만7649건으로 5년 동안 17.8%나 줄었다.
▼ 이민자 규제 강화하는 EU ▼
2008년 총선에서 불법 이민자들을 ‘악의 군대’로 칭했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이탈리아 정부는 집시들의 범죄를 막고 불법 이민을 근절하기 위해 인권단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지문날인 작업을 실시했다. 루마니아의 EU 가입 이후 이탈리아로 쏟아져 들어온 루마니아인 이주자가 34만여 명에 이르는데 이 중 약 16만 명이 집시이고 특히 8만 명이 불법 체류자인 것으로 추산된다. 2008년 이탈리아 의회는 불법 이민자들의 범죄가 심한 지역에는 최대 3000명의 군대까지 주둔시키고, 범죄를 저지른 불법 이민자에게는 같은 범죄를 저지른 이탈리아인보다 3분의 1이나 많은 형량을 선고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켰다. 또 불법 이민자들에게 빌려준 토지는 국가가 몰수하고, 불법 체류가 적발되면 최대 4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스페인은 지리적으로 북부 아프리카와 가까워 가난에 지친 아프리카인이 끊임없이 불법 이민을 시도한다. 스페인은 2005∼2008년 불법 근로자 75만 명을 합법화하는 조치를 시행하는 등 프랑스 이탈리아보다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이민정책을 취해왔다. 그러나 실업률이 10%를 넘고 불법 이민자들의 합법화 정책에 대한 보수층의 반발이 커지자 EU의 이민협정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이며 강력한 이민 규제 대열에 합류하는 추세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이 기사는 지난 1년간 SBS문화재단 후원으로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에서 연수한 국제부 이종훈 기자가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이 기자는 지난달 25일부터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