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만 신경쓰다 방심… ‘암 진단 뒤 5년’ 24%는 다른 질환으로 숨져
대화가 필요한 암 환자 암 치료가 끝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이 늘었다. 암 생존자를 위한 건강강좌, 외모관리, 심리치료에 병원이 나서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의 의료진, 성직자, 자원봉사자가 암 환자와 함께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성모병원
허모 씨(64)는 전립샘암 환자였다. 5년 전 전립샘암 수술을 받았고 예후도 좋았다. 하지만 허 씨는 암 치료에 집중하느라 고혈압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평소 수축기 혈압이 140mmHg를 넘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았다. 암 치료약 복용을 이유로 고혈압 약 복용은 소홀히 했다. 주치의에게 정기검진을 받았지만 고혈압 치료를 위해 가정의학과에서 따로 진료를 받지는 않았다. 결국 허 씨는 지난해 운동 중에 쓰러져 뇌출혈로 숨졌다.
김모 씨(36)는 2003년 팔뼈에 암이 생긴 육종 진단을 받았다. 수술 후 약물치료와 방사선 치료도 받았다.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하고 현재는 완치 판정을 받은 상태다. 암 치료도 고통스러웠지만 치료가 끝난 뒤에도 암이 재발할까 봐 두려움을 느꼈다. 어떤 식단으로 먹어야 하는지, 다른 건강검진은 받지 않아도 되는지 걱정스러웠다. 정보에 목말랐던 그는 인터넷을 통해 ‘이런 걸 먹었는데 나았다’는 정보를 얻었다.
○ 암 생존자, 다른 질환으로 숨진다
암 생존자는 정상인보다 상대적으로 만성질환에 걸릴 확률도 높다. 신동욱 서울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젊은 암 환자일수록 정상인보다 암 이외의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다”며 “20대가 2.5배로 가장 높고 50대는 1.23배에 달한다”고 말했다.
항암 치료는 필수적이지만 후유증이 남는다. 방사선 치료는 심장에 무리를 줘 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인다. 자궁경부암이나 고환암에 쓰이는 항암제 ‘시스플라틴’은 혈관을 뻣뻣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당연히 고혈압 등 혈관 질환이 발병하기 쉽다.
그러나 암 생존자들은 당장 시급한 암 치료에만 온 힘을 쏟다가 정작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 관리에는 소홀하다. 국립암센터 조사에 따르면 고혈압을 앓고 있는 암 환자 1만2636명 가운데 54.5%만이 고혈압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었다. 일반 고혈압 환자의 약물 복용 비율보다 15%포인트 낮은 것. 신 교수는 “암 생존자들은 고혈압, 당뇨를 암에 비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2차 암에 걸릴 위험도 높다
암 생존자가 건강관리에 소홀하다 보니 흡연 비만 당뇨 등으로 인한 2차 암의 발병도 잦다. 2차 암은 원래 암이 전이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위에 새로 발병하는 암을 말한다. 암 생존자가 기존 암이 나았다고 방심하다가 다른 암에 걸린다는 것. 암 생존자 가운데 32.6%만이 2년 안에 필요한 2차 암 검진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암센터가 암 진단을 받은 남성 1만4181명을 대상으로 7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2차 암 발병률은 정상인의 암 발병률보다 2∼3배 높았다. 종별로 보면 △폐암 2.1배 △대장암 4배 △간담도췌장암 1.9배 △비뇨생식기암은 2.6배 높았다. 박종혁 국립암센터 암정책지원과장은 “암의 치료가 끝나더라도 암 이외 건강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관리가 중요하다”며 “아직까지 암 생존자를 위한 통합지지의료서비스 관리 정책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 암 생존자 삶의 질 저하
암 생존자의 전반적인 삶의 질은 정상인에 비해 떨어진다. 유방암 생존자 1933명을 조사해 보니 피로, 구토, 통증 같은 증상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활동이 위축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했다. 유방암 생존자와 정상인 그룹에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사회적 전반적 건강 5개 항목을 100점 만점으로 각각 평가하도록 한 뒤 비교했더니 유방암 생존자 점수가 정상인보다 1∼13점 낮았다. 신 교수는 “암 치료를 받은 뒤 직장에서 업무 복귀가 어려워 스트레스를 겪는 환자가 많다”며 “이 때문에 암을 극복한 환자도 일반인보다 자살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국립암센터에 의뢰해 암 생존자 관리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암 치료 이후 건강관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학교 직장 출산 등 사회적 역할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