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의 관계를 놓고 시작된 대화는 자주 미국 쪽으로 흘러갔다. 한 베네수엘라인은 “우리나라에는 콜롬비아 게릴라가 없다”며 “이는 미국과 친한 콜롬비아가 미국을 대신해 제기하는 음모”라고 말했다. 새로 부임할 예정인 래리 팔머 주베네수엘라 미국대사에 대한 불만도 컸다. 그가 최근 “베네수엘라 정부와 콜롬비아 게릴라 사이에 강한 연계가 있다”고 한 발언이 문제가 된 것. 미국에서 유학까지 했다는 한 엘리트 여성은 “미국이 정확한 근거도 없이 베네수엘라를 공격하고 있다”며 언성을 높였다. “콜롬비아가 사회 골칫거리인 빈민을 없애기 위해 순진한 빈민가 청년들을 게릴라로 몰아 죽이고 있다”고도 했다. 중산층도 대체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들의 주장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강조해온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베스 대통령은 매주 일요일 국영TV를 통해 국민과 직접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선전 선동으로 가득한 이 프로그램은 꽤 인기인 듯했다. 시내 중심가 광장에서는 텐트를 쳐놓고 녹화 테이프를 틀어놓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청중도 꽤 많았다.
하지만 막상 맥도널드나 아이폰, 나이키 같은 미국 제품을 파는 상점은 성황리에 영업을 하고 있었다. ‘미인의 나라’ 베네수엘라에서 외모와 브랜드에 집착하는 여성들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산물인 고가의 사치품에 목매고 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였다. 포퓰리즘이 만들어낸 이런 이중성이 베네수엘라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주된 요인이 아닐까. 한참이나 줄을 서 버거킹 햄버거를 산 뒤에 든 생각이다.
―카라카스(베네수엘라)에서
이정은 국제부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