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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윤완준]국군포로 북송됐는데 ‘조용한 외교’만 고집하나

입력 | 2010-08-05 03:00:00


하얗게 센 머리카락, 깊게 파인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 거의 감겨 시력을 상실한 듯한 오른쪽 눈, 앙상한 다리…. 사진 속 국군포로 정모 씨(82)는 지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동아일보는 정 씨가 지난해 8월 북한을 탈출한 직후 찍은 사진을 지난해 말 확보했다. 탈북 8일 만인 지난해 8월 24일 중국 공안에 체포되기 전까지 머물던 중국 내 어느 허름한 방에서 찍은 사진이다.

기자는 고민 끝에 이 사진을 보도하지 않았다. 정 씨의 인권, 북한에 있을 정 씨 가족의 안전 등을 고려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굴을 노출하면 정 씨의 강제 북송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최근 기자는 정 씨가 북송된 것으로 정부가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본보 7월 27일자 A1면 참조 [단독]中억류 탈북 국군포로 끝내 북송

기사를 쓰며 사진을 다시 봤다. 그의 눈빛에서 북송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보도가 나간 뒤 정부는 “북송됐다는 첩보가 있지만 확인이 되지 않았다. 여전히 정 씨 석방을 위해 중국 당국과 교섭하고 있다”는 반응만 보였다.

3일에는 연합뉴스가 6·25국군포로가족회 이연순 대표의 말을 인용해 “정 씨가 2월 북송돼 평안남도 맹산 인근의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서도 정부는 “중국 당국과 계속 석방교섭을 진행하고 있다”는 판에 박힌 대답만 되풀이했다.

정부가 정 씨의 북송 사실을 공식화하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정부는 정 씨 억류 이후 80여 차례에 걸쳐 중국 당국에 북송 방지, 한국 입국 등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외교적 마찰이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억류 1년이 다 되도록 중국이 소재지마저 확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제는 중국 정부의 무책임을 공개적으로 제기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 않을까.

중국은 정 씨의 소재지에 대해 “우리도 알아보려 노력했지만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식의 답을 되풀이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자기네 공안이 체포한 사람의 소재지를 당국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조용한 물밑 외교’에서 벗어나 공개적으로 중국에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할 때가 됐다고 본다. 국군포로 문제는 국민의 인권 차원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다. 사진 속 힘없는 노인은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 맞서 한국군으로 참전한 용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윤완준 정치부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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