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오토 브루너, 베르너 콘체, 라인하르트 코젤렉 엮음/한림대 한림과학원 기획/136∼271쪽·7900∼1만3900원/푸른역사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이 독보적인 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기존 사전과 달리 각 개념을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하려 했기 때문이다. 코젤렉은 ‘개념’은 정치 사회와 끊임없이 연관되면서 다의성을 갖는 단어로 봤다. 이 책을 번역한 김용구 한림대 한림과학원장은 “코젤렉은 1750년부터 1850년까지 유럽에서 개념들의 의미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 근대 세계와 그 이전을 구분하게 됐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이런 점에서 ‘개념사 사전’은 근대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국내에 출간된 문명과 문화, 진보, 제국주의, 전쟁, 평화 등 다섯 권은 이 중 한국사회와 관계가 깊거나 중요한 항목을 뽑아 번역한 것이다. 이 중 2권 ‘진보’는 코젤렉이 직접 집필에 참여한 책이다. 코젤렉이 근대를 규정하는 주요 특징이었던 ‘진보’의 개념사를 직접 썼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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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진보를 신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에게 영원히 주어진 하나의 과제로 파악한다. 독일에서 진보를 뜻하는 단어 ‘Fortschritt’가 정착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근대 들어 과학, 예술, 철학, 도덕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새로운 이론과 발견, 발명이 탄생했고, 개별 영역 진보의 역사가 모여 ‘역사는 진보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이를 통해 진보는 독립적 개념으로서 인류와 사회의 보편적 동인(動因)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19세기 들어 진보는 정치 표어로 사용되면서 보편화됐다.
코젤렉은 책에서 “새로운 언어의 발생은 근본적인 경험과 의식의 변환을 증거하며 동시에 변환을 촉진시킨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개념은 사회의 반영이면서 사회 변화의 동인이라는 것. ‘진보’라는 개념이 근대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는 구절이면서, 그가 개념사 연구에 매진한 이유를 보여준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