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성취도평가, 학생들은 덤덤해
학업성취도평가를 무턱대고 옹호할 생각이 내겐 없다. 그래서 이 시험이 정말 아이들을 열 받게 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학부모는 “문제가 쉬웠다”며 딸이 태평했다고 한다. 문구점에서 만난 다른 초등생은 “OMR카드 작성은 힘들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들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시험범위가 너무 넓어 옛날에 배운 문제에 대해 기억이 가물거리긴 했지만 어렵지는 않았어요.” 어쨌건 시험을 망쳤다고 속상해하는 학생은 없었다. 물론 내가 접촉할 수 있는 범위에 국한된 얘기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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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성취도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학교와 평가에 태평한 학생 및 학부모들, 이 둘 사이의 괴리에 평가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학업성취도평가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학생이 아니라 학교와 교사란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고사’가 부담이라며 피켓을 들고 나오는 아이들에게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에는 예민하지만 시험 결과가 우수, 보통, 기초, 기초미달 등 4등급으로 구분돼 통보되는 이런 시험엔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보통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학업성취도평가는 확실히 교사에게는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다. 동네 이웃인 한 초등학교 여교사는 “우리 반의 성적이 나쁘면 자존심도 상하고 교장이나 동료 교사로부터도 눈총 받는다”고 말했다. 반에서 기초학력 미달학생이 나오면 이 아이들을 따로 지도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사전에 공부시켜 기초학력 미달학생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도 스트레스다.
무사안일 교장 교사에게 자극제 됐다
시험 성적과 교사의 급여를 연계하는 미국의 경우는 교사들의 스트레스가 우리보다 더 심하다. 스티븐 래빗의 ‘괴짜경제학’을 보면 교사가 학생의 시험 성적에 책임을 져야 하는 ‘고부담 시험’이 등장한 이후 시험 부정에 연루되는 사람은 학생이 아니라 교사였다. 어떻게든 학생성적을 올려야 하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답안지를 몰래 고치는 일이 벌어졌다. 2008년 평가에서 지역과 학교 차원의 부정행위가 적발된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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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