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증거로” 한달새 50명 기증
6·25전쟁 당시 소총병으로 참전했던 이상룡 씨(79)가 1951년 강원 춘천 인근의 한 학교에서 가져와 60년째 보관하다 최근 전쟁기념관에 기증한 태극기(왼쪽). 오른쪽은 당시 장병들이 사격 연습할 때 사용했던 사격기록지. 사진 제공 전쟁기념관
피란일기-소련 전화 등 299점
‘사료찾기 캠페인’ 시민들 호응
이달 9일까지 약 1개월 동안 전쟁기념관에 기증 의사를 밝힌 기증자는 모두 50명, 기증 물품은 299점이다. 기증자는 참전용사가 25명으로 가장 많았고 후손 13명, 유물수집상 4명, 기타 8명 등이다. 기증 유물은 사진이나 영상물이 139점으로 가장 많았고 문서 및 기록물 101점, 복식류 28점, 군표 계급장 부대마크 등 표식류 24점, 출판물 3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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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씨는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동아일보의 알림 기사를 보고 전쟁기념관에 연락을 했다”며 “그동안 장롱 속에 넣어두고 생각나면 꺼내 봤는데 이제는 전쟁기념관에 두고 여러 사람이 보면서 가슴 아픈 전쟁을 상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 씨가 기증한 유물들은 그 가치도 크다. 서규화 전쟁기념관 학예팀장은 “국방경비대 시절 착용했던 인식표는 매우 희귀한 것”이라며 “전쟁기념관은 물론 국내 어느 기념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포병통신장교 동기생 명단은 전시 교육실태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기증받은 유물 중에는 피란민의 일기도 있다. 6·25 발발 당시 19세였던 김종태 씨(79)는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에게 밀려 낙동강 방어선으로 후퇴하자 이들과 함께 낙동강 일대로 피란했고 이때 1주일가량 썼던 일기를 전쟁기념관에 기증했다.
18쪽의 일기에는 △피란 가기 전 식량을 마당에 깊이 파묻었던 이야기 △피란 가면서 말로만 듣던 미군 흑인 병사들을 보고 신기해했던 일 △피란길이 고통스러워 아낙네들이 울 때 남자이기 때문에 같이 울지 못했던 사연 등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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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3사단 26연대 소총소대장을 맡았던 박준허 씨(83)는 경북 포항 전투에서 북한군 12사단 소속 통신병들을 사살하고 노획한 소련제 전화기를 기증했다. 이 전화기는 당시 미군 전화기와도 호환이 돼 실제 통신에 사용됐다고 한다.
소총병으로 참전했던 이상룡 씨(79)는 전쟁 당시 춘천 인근의 한 학교에 걸려있던 태극기를 기증했다. 이 씨는 1951년 강원 횡성 전투에서 중공군 포로로 끌려가다 탈출하던 도중 중공군 점령지역에 태극기가 게양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몸에 품고 도망쳤다고 한다.
전쟁기념관 측은 “개인의 장롱 속에 묻혀있는 6·25 관련 자료나 물품 등이 기념관에 귀중한 역사적 유물로 전시돼 당시의 아픔과 기억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유물 기증에 동참해 주시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