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로 취재를 떠나는 기자로서는 지옥에 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남아공에 도착한 뒤에도 취재진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범죄 소식이 심심찮게 들렸다. 이렇다 보니 호텔 밖으로 나갈 때면 항상 여러 명이 사방 경계를 하며 붙어 다녔다. 호텔도 안심하지 못해 잠자리에 들기 전 문단속을 단단히 하고 귀중품은 금고에 꼭 넣었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경기장 보안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월드컵이 열리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하지만 미국의 뉴욕타임스 등 세계 유력 언론들은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결승전이 열린 12일 ‘남아공은 성공적으로 월드컵을 치렀고 종족 갈등과 에이즈로 곪아가는 아프리카 대륙에 희망을 심어줬다’고 평가했다. 기자도 한 달 넘게 머물면서 지나치게 걱정만 한 탓에 남아공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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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남아공 국민의 월드컵 개최에 대한 자부심과 축구 사랑은 대단했다. 누굴 만나도 축구로 얘기꽃을 피웠다. 그들은 박지성과 한국 축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요하네스버그의 대표적인 빈민가인 템비사를 갔을 때 붉은 황토로 뒤덮인 허허벌판에서 낡아서 너덜너덜해진 축구공을 차던 아이들을 잊지 못한다. 노란색 남아공 유니폼을 입은 한 아이에게 월드컵에 대해 묻자 그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월드컵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줬다”고 대답했다.
이제 누가 남아공 월드컵에 대해 묻는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요바(Ayoba·남아공어로 최고라는 뜻).” 남아공은 월드컵을 치를 자격이 충분했다.
김동욱 스포츠레저부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