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힌 10년 추격전’ 첩보영화 방불전화-e메일 도청, 몰카 등 스파이 활동 끈질긴 추적
미국 법무부가 28일(현지 시간) 러시아 정보요원 10명을 붙잡아 간첩활동 혐의로 기소한 내용을 보면 냉전시대의 첩보 영화를 연상케 한다.
미 연방수사국(FBI) 방첩부는 러시아의 대외첩보부(SVR) 소속 비밀요원들이 미국과 캐나다인 신분으로 몰래 위장해 오랫동안 스파이활동을 하고 있다는 첩보를 포착하고 수년 동안 추적한 끝에 러시아 정보요원 10명을 미국에서 불법적으로 정보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에게 공작자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정보요원 한 명은 아직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FBI 요원들이 러시아 간첩혐의자들을 감시한 정황을 보면 첩보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주 찾는 레스토랑이나 호텔 객실에는 몰래카메라를 달았다. e메일을 몰래 열어보고 전화도청을 한 것은 물론이다.
FBI가 이들의 간첩활동을 파악한 때는 2000년. 간첩혐의자들은 1990년 초반이나 중반부터 신분을 위장해 미국에 살고 있었다. 이들은 유엔주재 러시아대표부 직원 등 미국에 있는 러시아 관리들로부터 자주 돈 가방을 전달받았고 한 혐의자는 남미의 한 나라에서 온 러시아 관리로부터 돈을 받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또 공원 벤치에서 현금이 든 쇼핑백을 건네받기도 했다. 2006년 6월엔 간첩혐의자 2명이 뉴욕에서 다른 스파이가 2년 전 땅속에 묻어놨던 돈다발 봉지를 파내기도 했다.
스파이들은 러시아 대외첩보부 본부인 ‘모스크바 센터’와 교신하기 위해 다양한 첨단수법과 장비를 활용했다. 무선 전보와 폐지된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특정 주파수에서만 암호를 받을 수 있는 무선장치나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파일에 또 다른 비밀스러운 내용을 숨겨놓는 기법도 동원됐다.
스파이들은 또 휴대용컴퓨터에 개인무선망을 설치한 뒤 커피숍이나 달리는 차량 안에서 러시아 관리들과 정보를 주고받았다. 이들이 이용한 은행의 대여금고에서는 2005년 사망한 캐나다 남자의 신분증도 발견됐다. ‘모스크바 센터’가 보낸 지령에선 “너의 주 임무는 미국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과 관계를 모색하고 정보보고서를 모스크바 센터로 보내는 것”이라고 돼 있다. 스파이들은 포섭한 미 권력층 내부 정보원을 ‘농부’ ‘고양이’ ‘앵무새’와 같은 암호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