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로펌 “외국로펌과 손잡겠다”
한국 법률시장 개방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국내 로펌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그동안 국내 로펌들이 온전히 나눠 가졌던 한국 법률시장에 외국 로펌이 진출하면 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국내 로펌들은 법률시장 개방에 발맞춰 무슨 고민을 하고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까.
동아일보가 김앤장 태평양 광장 세종 등 국내 주요 로펌 18개를 대상으로 21∼24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5%에 해당하는 13개 로펌이 “해외 로펌이 들어오면 증권, 자본시장 등 금융 분야 사건 수임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인수합병, 공정거래 등 기업 관련 분야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답변(30.0%)이 뒤를 이었다. 상대적으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해외 로펌들이 금융과 기업자문 분야를 잠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 조세나 지적재산권 등 국내 시장의 특수성이 반영된 분야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로펌들은 이런 우려 속에 법률시장 개방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해외 거대 로펌과 완전히 합작하는 것보다는 사안에 따라 전략적으로 제휴하면서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응답자의 절반이 법률시장이 개방되더라도 5개 이상의 토종 로펌이 독자 생존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 외국의 예에서 배우자면…
거대시장 독일, 준비없다 쓴맛
개방준비 일본, 대형토종 적응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내 대형 로펌들은 독일과 일본의 전례를 주목하고 있다. 독일은 시장 개방에 앞서 준비에 소홀하다 1998년 전면 개방 후 10대 로펌 중 8곳이 영·미계 대형 로펌에 흡수·합병됐다. 일본은 1987년부터 18년간 조금씩 법률시장을 개방하며 대비했지만 중대형 로펌 15개 중 절반 이상이 영·미계에 흡수됐다. 그래도 1∼5위권 로펌들은 인수합병과 세대교체 등을 통해 대형화·전문화에 성공하면서 토종 로펌의 자존심을 지켰다.
대륙아주·화우 인수합병 시너지 효과 톡톡
2세대 로펌 중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법무법인 율촌이다. 13년이라는 짧은 역사 동안 변호사 숫자만 20배가 증가하고 연간 매출 규모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이러한 초고속 성장의 바탕에는 철저한 협업 시스템과 합리적 수익배분, 투명 경영, 민주적 파트너 제도 등이 작용했다. 덕분에 율촌은 아시아 법률월간지 ALB가 선정하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30대 로펌’에 최근 2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법률시장의 빗장이 열리기 전이지만 영·미계 공룡 로펌들의 한국 시장 잠식은 이미 시작됐다. 블룸버그가 발표한 ‘2009년 대한민국 M&A 법률자문 순위’를 보면 상위 20개 로펌 가운데 외국계 로펌이 15개나 올라 있다. 또 지난해 한국 법률서비스 수지는 3억5800만 달러의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한 중견 로펌 대표변호사는 “로펌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정부의 법률시장 보호 대책 마련도 시급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