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십자군왕국의 유사성은 아랍세계에서는 곧잘 인용된다. ‘유대인과 십자군’은 오사마 빈라덴이 즐겨 쓰는 관용어이며 팔레스타인 강경파들은 십자군을 패퇴시켰던 아랍의 살라딘 장군이 다시 나타나길 고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십자군왕국의 흥망에서 배워야 할 게 있다. 현재 이스라엘이나 십자군왕국 모두 호전적 적국에 둘러싸인 소국이다. 동맹국은 멀리 있고 적들은 곁에 있다. 둘 다 중동에 있지만 서구를 지향하며 전 세계에서 광적인 신도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십자군왕국의 패망 원인이 된 문제들을 이스라엘도 직면하고 있다.
10년 전 평화협상이 중단되기 전 이스라엘은 세 분야에서 십자군왕국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었다. 이스라엘은 막강한 군사력과 핵 억지력으로 지리적 취약성을 극복했다. 또 터키 요르단 이집트 등 지역 내 강국들과도 비교적 안정된 관계를 맺어왔으며 슈퍼파워인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자국 내 아랍계 소수민족들은 중동의 어느 나라 소수민족보다 좋은 대우를 받았으며 사회통합이 잘 이뤄졌다. 그리고 이스라엘인들은 주민의 대부분이 아랍계인 가자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서 철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0년이 흐른 지금 군사적 이점을 제외하고 이스라엘은 외교적으로나 인구학적으로 점점 더 12세기 예루살렘왕국을 닮아가고 있다. 가자지구 전쟁과 레바논 전쟁, 가자지구 봉쇄작전 실패로 세계무대에서 고립됐다. 또 요르단 강 서안의 아랍계 주민은 급속히 늘어나 유대인이 소수가 되고 있다.
미국의 지지를 받는 한 이스라엘은 외교적 고립에서도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국 내 인구 구성의 변화는 큰 문제다.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서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와 유사한 정책을 통한 장기 점령을 택하든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스라엘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넓히는 방안이다.
물론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서안에서 철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영토와 안전 측면에서 큰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또 요르단 강 서안에서의 일방적인 철수는 2005년 가자지구 철수보다 훨씬 더 꼬인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팔레스타인 정파 간의 심각한 폭력사태를 부를 수 있고 이들의 배후 지원세력인 이란과 시리아에 전쟁 구실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
로스 두댓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