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박물관 1, 2/오르한 파묵 지음·이난아 옮김/440쪽, 424쪽·각 권 1만3000원·민음사독한 사랑, 그녀의 박물관을 만들다
오르한 파묵. 사진 제공 민음사
하지만 일생에 걸친 열정적인 연모와 집착으로 그 여인을 기리는 박물관을 만든다는 이 소설의 발상은 기상천외하다. 거기에는 그녀가 어린시절 탔던 자전거, 흰 양말, 속옷, 귀걸이, 심지어 그들이 데이트 하던 당시 식당 테이블에 놓였던 소금, 후추통도 전시한다니! 2006년 오르한 파묵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이 장편은 1970년대 터키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연애소설이다.
주인공이자 소설의 화자인 케말은 이스탄불의 상류층 사회에서도 손꼽히는 재력가 집안의 둘째 아들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악의 없고 순수하지만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전형적인 ‘도련님 스타일’. 약혼녀인 시벨 역시 프랑스에서 유학한 명문가 출신의 교양 있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이 커플의 운명은 퓌순이 나타나며 완전히 달라진다.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작가는 유머러스하게 묘사한다. 물론 한 번 어긋난 이들의 사랑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퓌순의 부재 당시 덮쳐온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 아는 카멜은 그때부터 만일을 대비해 퓌순과 관련된 모든 물건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허무맹랑해 보일 만큼 지고지순한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 외에도 당대 이스탄불 상류층 사회의 면모, 보수적인 성 문화와 가부장적인 제도에서 갈등하는 젊은 세대들의 고민 등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이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에 설득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올 8월 말 이스탄불에 실제로 파묵의 소설을 바탕으로 당시 터키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을 보여주는 ‘순수박물관’이 개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