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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알짜 - 공짜학원 ‘시프트 아카데미’ 굿”

입력 | 2010-05-24 03:00:00

임대주택 자녀들 모아
SH공사 직원-대학생이
수학-영어 주2회 지도
학생-선생님들 열정에
‘우수학생’ 대거 배출




17일 서울 강남구 일원1동 ‘시프트 아카데미’에서 이광로 씨(27)가 중학교 1학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SH공사는 공사에서 지은 임대주택에 사는 중학생들에게 무료로 이 학원을 다닐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사진 제공 SH공사

“자, ‘Tom can play tennis’에서 tennis는 목적어야. 목적어!”

17일 오후 6시 반 경 서울 강남구 일원1동 한 상가건물 1층에 위치한 학원에서 영어선생님이 강조하자 아이들 역시 목소리에 힘을 주며 따라한다. 하지만 처음 배우는 ‘목적어’ 개념이 생소한 중학교 1학년 아이들. 10여 분 전에 ‘You are a student’의 student가 ‘보어’라는 걸 배워놓고도 선생님이 다시 묻자 고개를 갸웃거린다. “목적어? 보어인가? 아, 헷갈려∼.” 교실 3개가 전부인 이 작은 학원은 SH공사에서 영구,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중학생들에게 무료로 과외 학습을 시켜주는 ‘시프트 아카데미’다.

○ 무료라도 ‘열공’, 박봉에도 ‘열강’

1학년 교실 분위기는 ‘왁자지껄’이다. 발음이 ‘쏘트’에 가까운 단어 ‘thought’를 한 학생이 ‘또치’라고 읽자 12명의 입에서 동시에 까르르 웃음보가 터진다. “자동사의 반대가 뭐냐”는 질문에 정답인 ‘타동사’ 대신 “수동사”라고 대답하는 아이도 있다. 선생님은 칠판을 싹싹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개념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진지할 때도 조용하진 않다. 선생님이 ‘문장 5형식’을 칠판에 적고 설명할 땐 “예 좀 들어주세요” “이해가 안 가요. 다시 설명해 주세요”라는 주문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세세한 설명 끝에 내용을 드디어 이해했을 땐 또 “아∼ 알겠다!”는 탄사 때문에 한바탕 시끌벅적.

반면 1년 선배인 2학년들이 영어수업을 받고 있는 교실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선생님에게 단어와 예문이 적힌 프린트를 받자마자 아는 단어와 모르는 단어를 스스로 착착 분류한다. 예문 해석이 안 되면 조용히 선생님을 부른다. 선생님이 칠판에 뭔가를 적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펜을 드는 모습도 보인다.

이곳에서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1주일에 두 번씩 영어와 수학을 학교 수업 진도에 맞춰 예습할 수 있을 정도의 빠르기로 가르친다. 선생님들은 전문 강사가 아니다. SH공사 직원들이 퇴근 후 시간을 쪼개 수업을 하거나 대학생들이 분필을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공사 직원 가족이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강단에 서기 전 2, 3시간씩 준비를 해 올 정도로 열정을 보인다. 중1 영어를 담당하는 이광로 씨(27·서울시립대 3년)는 “한 달에 두 번씩은 학생들 이해 수준에 따라 보충강의도 한다”고 말했다. SH공사에서는 이 선생님들에게 저녁식사 값과 교통비 명목으로 한 달에 40만 원 정도를 답례한다.

○ 수업 들은 학생 중 ‘전교 1등’도 나와

시프트 아카데미는 2007년 11월 강서구 가양2동에 처음 생겼다. 76m²(약 23평) 넓이의 좁은 공간에서 처음 시작했다. 2008년엔 노원구 월계로에 두 번째 학원이 문을 열었다. 강남은 지난해 9월 수업을 시작했다.

박완수 SH공사 고객문화팀장은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과외 교습을 거의 받지 못해서인지 처음 들어올 때 성적은 그리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래도 눈부신 성과는 있다. 가양동 학원이 문을 열 때 수업을 들은 학생 중 한 명은 지금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전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수재가 됐다. 같은 시기 수업을 들은 또 다른 학생도 지금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전교 1, 2등을 다투고 있다.

학원에서도 아이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 주기 위해 각종 이벤트를 마련한다. 최근에는 성적이 많이 오르고 수업 태도가 좋은 아이들 18명이 다음 달 백두산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우수학생’으로 백두산에 가게 된 이모 군(13)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기 전에 시프트 아카데미에서 예습을 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며 “열심히 공부해서 꼭 의사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공사 측은 시프트 아카데미 수를 더 늘릴 계획이다. 유민근 SH공사 사장은 “올해 안에 관악구에 1곳을 더 열 예정”이라며 “학생들에겐 문화예술 체험학습을 시켜주고 학부모들에겐 명사들의 강연을 들을 기회를 주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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