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자녀들 모아SH공사 직원-대학생이수학-영어 주2회 지도학생-선생님들 열정에‘우수학생’ 대거 배출
17일 서울 강남구 일원1동 ‘시프트 아카데미’에서 이광로 씨(27)가 중학교 1학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SH공사는 공사에서 지은 임대주택에 사는 중학생들에게 무료로 이 학원을 다닐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사진 제공 SH공사
17일 오후 6시 반 경 서울 강남구 일원1동 한 상가건물 1층에 위치한 학원에서 영어선생님이 강조하자 아이들 역시 목소리에 힘을 주며 따라한다. 하지만 처음 배우는 ‘목적어’ 개념이 생소한 중학교 1학년 아이들. 10여 분 전에 ‘You are a student’의 student가 ‘보어’라는 걸 배워놓고도 선생님이 다시 묻자 고개를 갸웃거린다. “목적어? 보어인가? 아, 헷갈려∼.” 교실 3개가 전부인 이 작은 학원은 SH공사에서 영구,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중학생들에게 무료로 과외 학습을 시켜주는 ‘시프트 아카데미’다.
○ 무료라도 ‘열공’, 박봉에도 ‘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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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할 때도 조용하진 않다. 선생님이 ‘문장 5형식’을 칠판에 적고 설명할 땐 “예 좀 들어주세요” “이해가 안 가요. 다시 설명해 주세요”라는 주문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세세한 설명 끝에 내용을 드디어 이해했을 땐 또 “아∼ 알겠다!”는 탄사 때문에 한바탕 시끌벅적.
반면 1년 선배인 2학년들이 영어수업을 받고 있는 교실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선생님에게 단어와 예문이 적힌 프린트를 받자마자 아는 단어와 모르는 단어를 스스로 착착 분류한다. 예문 해석이 안 되면 조용히 선생님을 부른다. 선생님이 칠판에 뭔가를 적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펜을 드는 모습도 보인다.
이곳에서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1주일에 두 번씩 영어와 수학을 학교 수업 진도에 맞춰 예습할 수 있을 정도의 빠르기로 가르친다. 선생님들은 전문 강사가 아니다. SH공사 직원들이 퇴근 후 시간을 쪼개 수업을 하거나 대학생들이 분필을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공사 직원 가족이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강단에 서기 전 2, 3시간씩 준비를 해 올 정도로 열정을 보인다. 중1 영어를 담당하는 이광로 씨(27·서울시립대 3년)는 “한 달에 두 번씩은 학생들 이해 수준에 따라 보충강의도 한다”고 말했다. SH공사에서는 이 선생님들에게 저녁식사 값과 교통비 명목으로 한 달에 40만 원 정도를 답례한다.
○ 수업 들은 학생 중 ‘전교 1등’도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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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SH공사 고객문화팀장은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과외 교습을 거의 받지 못해서인지 처음 들어올 때 성적은 그리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래도 눈부신 성과는 있다. 가양동 학원이 문을 열 때 수업을 들은 학생 중 한 명은 지금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전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수재가 됐다. 같은 시기 수업을 들은 또 다른 학생도 지금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전교 1, 2등을 다투고 있다.
학원에서도 아이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 주기 위해 각종 이벤트를 마련한다. 최근에는 성적이 많이 오르고 수업 태도가 좋은 아이들 18명이 다음 달 백두산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우수학생’으로 백두산에 가게 된 이모 군(13)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기 전에 시프트 아카데미에서 예습을 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며 “열심히 공부해서 꼭 의사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공사 측은 시프트 아카데미 수를 더 늘릴 계획이다. 유민근 SH공사 사장은 “올해 안에 관악구에 1곳을 더 열 예정”이라며 “학생들에겐 문화예술 체험학습을 시켜주고 학부모들에겐 명사들의 강연을 들을 기회를 주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