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과거 방중이후 변화 전무② 인민 환심사려는 의도 뻔해③ 천안함 용사에 대한 모욕
사회주의 북한은 정치적 선전과 선동의 나라다. 김 위원장은 1970년대 이후 각종 선전 선동 기법을 동원해 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우상화하면서 후계자 자리를 확고히 했다. 1998년 공식 최고지도자가 된 뒤에는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국제무대에 무력시위(핵 위협)와 대화(방중과 6자회담 등)라는 소품을 번갈아 들고 주연을 맡았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엔 감탄보다는 싸늘한 냉소의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전문가 B 씨는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김 위원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좀 지나친 수준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 김 위원장이 중국을 보고 가더라도 북한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믿음이 팽배해 있다. 김 위원장이 2000년부터 네 차례 중국을 방문했을 때 국제사회는 ‘중국식 개혁 개방 학습’이라며 북한의 변화를 기대했다. 북한은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와 2003년 종합시장 도입 등 제한적인 경제개혁을 시도했지만 2005년 하반기를 정점으로 다시 보수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스템으로 돌아섰다.
둘째, 북한 지도부는 이번 방중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주민들에게 전파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전문가 C 씨는 “지난해 화폐개혁과 외환통제 등 무리한 경제정책의 실패로 점수를 잃은 지도부가 방중 성과를 내세워 인민들의 환심을 사 3대 세습의 동의를 얻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힘으로 금강산 및 개성공단 등에서의 대남 위협 수위를 높일 가능성도 있다.
셋째,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고 믿는 이들은 김 위원장에 대한 관심이 희생된 46용사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3일 중국에 나타나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달 29일 천안함 46용사의 장례식 후 불과 5일 뒤였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면 이를 지시했을 김 위원장의 화려한 외유를 하늘에 있는 천안함 용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바라볼까.
신석호 정치부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