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 보급 거점 ‘문우관’ 23년째 운영 김홍영 씨
전통 한학자 찾아다니며 배워
대
학생-일반인에 한학 가르쳐재야학자로 고전번역에 참여
‘대동운부군옥’ 등 수십권 국역
20대 때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학을 익혀 대구 중구 문우관에서 20여 년간 학생을 가르쳐온 김홍영 씨. 일반인의 한문 해독 갈증을 해결해 주던 그는 최근 부산대 점필재연구소 국역실장도 맡아 한국고전번역연구원의 번역 사업에 참여한다. 대구=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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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여도지기야, 구의, 기기유구, 이문여도구폐, 과불가합이위일야여(文與道之岐也, 久矣, 其岐愈久, 而文與道俱弊, 果不可合而爲一也歟).” “문과 도가 갈라진 것이 오래되었다. 갈라짐이 오랠수록 문과 도는 함께 폐하게 되었으니, 그렇다면 과연 합쳐져서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인가.”
조선말기의 거유(巨儒) 심재 조긍섭(1873∼1933)의 가전(家傳·한 집안의 사적을 적은 기록)에 나오는 글귀다. 20대 여학생이 읽고 해석하자 다른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20대와 70대가 함께 모여 공부를 하게 된 사연의 중심에는 23년간 이곳에서 한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홍영 씨(51)가 있다. 재야 한학자인 그가 최근 한국고전번역연구원이 한국의 대표적인 문집을 번역하기 위해 공모한 거점연구소 협동번역사업의 책임연구원으로 선정됐다. 부산대 점필재연구소와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이 컨소시엄으로 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점필재연구소 국역실장으로 초빙한 것이다.
그는 스무 살 때 대구와 경남 합천, 광주 등지로 돌아다니며 전통 한학자를 찾아 배움을 청해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사기열전(史記列傳), 예기(禮記)를 배우기 시작했다. 스물여덟 살부터는 이곳 문우관에서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을 병행했다. 여섯 명의 스승 중 생존해 있는 사람은 광주의 송담 이백순 선생(81)이 유일하다.
대학의 한문학과를 다니는 젊은 학생과 집안에 내려오는 한적(漢籍)을 읽으려는 일반인들은 한문 해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문우관을 찾았다. 한문 해독은 수많은 경전에 대한 바탕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대학 강단에서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문우관 강독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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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은 철학과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공부입니다. 세상의 이치와 존재론적 회의를 담은 끊임없는 질문으로 자신을 성찰하는 학문 말입니다. 한문은 그런 정신이 들어 있는 기호일 뿐이죠.”
그는 “삶의 이치와 철학인 도(道)가 배움의 대상인 문(文)으로 표현됐을 뿐”이라며 “둘의 합일을 지향하는 태도가 학문하는 자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문우관에서 지난 20년간 줄곧 퇴계 문집을 가르쳤던 그는 올해에는 심재 문집을 읽을 계획이다. 문우관에 나오는 젊은 학생들과 함께 해독한 심재 문집은 고전번역연구원의 번역 사업의 밑바탕이 될 예정이다. 이날 아침 문우관의 모란이 핀 뜰에는 문향에 취했는지 호랑나비 세 마리가 날아들었다.
대구=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