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의 시네마 천국]
‘뭐, 이렇게 정교하게 연출한 영화가 다 있지?’ 영화학자인 남편과 영화평론가인 내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보는 방법이나 영화에 대한 감수성이 극과 극인 우리 부부가 이 영화의 촬영 기법에서만큼은 의견이 일치했다. 로랑 캉테 감독의 신작 ‘클래스’는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다큐멘터리 같다. 원작자 프랑수아 베고도는 실제 교사이고 영화 속 교사들은 진짜 교사, 아이들은 진짜 아이들이며 아이들의 부모도 실제 부모가 나온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는 철두철미하게 합을 맞춘 페이크 다큐(fake documentary), 즉 가짜 다큐멘터리다. 카메라 여러 대를 교실 여기저기에 배치하고, 인물들의 반응과 역반응을 끈기 있게 기다리며, 철저히 다큐적 양식인 핸드헬드(handheld·들고 찍기)로 전 과정을 찍었다. 관객들은 영화 내내 집중하지 않으면 학생과 교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놓치기 쉽다. 왜 이렇게 힘든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을까. 모든 것이 ‘교실 수업’이라는 ‘현장’에 무한대로 접근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 ‘클래스’ 속 수업 모습은 개판이다. 학생들은 사사건건 교사들한테 대들고 교사들은 수업하기 전부터 아이들에게 넌더리를 낸다. 파리 외곽 20구역인 이 동네는 아랍, 아프리카, 중국 같은 각처의 프랑스 이민자 자녀가 뒤섞여 있다. 심지어 어떤 교사는 ‘이 아이는 좋고 이 아이는 나쁘고’를 학기가 시작하기 전 평가 완료한 상태다. 그러나 프랑스어 교사 마랭은 조금 다르다. 끈기 있게 아이들과 토론을 벌이고 역동적으로 아이들 말을 받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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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열심히 가르쳤건만, 학기말이 끝났는데 그 학생은 ‘학교에서 배운 게 아무것도 없다’고 고백한다. 이 영화의 원제목이 클래스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벽 안에서(Entre Les Murs)’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운동장에서 마랭과 아이들이 축구하는 장면과 빈 교실의 빈 책상, 빈 의자가 주는 영감과 감흥은 마치 잔잔한 물결 하나가 커다란 파도를 몰고 오는 듯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영화는 결코 교육제도의 희망이나 절망을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교가 아무리 ‘민주주의에 관해’ 떠들어도 학교가 ‘민주적’이지 않는 한, 아이들은 자기 인생의 축소판인 학교와 부모에게서 대접받은 그 태도를 그대로 물려받을 것이라는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칸이 2008년에 이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준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클래스’는 쉬운 결론과 희망에 안주하기보다, 다른 좋은 영화들이 그렇듯 적극적으로 교육 현실에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부모이자 선생인 우리는 무슨 답을 해야 하나. 줄거리는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클래스’의 의문은 긴 꼬리를 남기며 사색의 울타리를 넘나든다. 그래서 결심하게 된다. 아직도 인생에서 배울 게 남아 있다면, 영화 속 빈 의자에 나도 같이 앉아 있어야겠다고.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주간동아 7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