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세대 고뇌와 갈등 잔잔히 그려81세 배우 모노드라마 무료 공연도
‘포옹 그리고 50년’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 ‘그대를 속일지라도’ 등 줄이어
연극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에서 준비 없이 고령화시대를 맞이한 70대 노인의 속내를 대변하는 세 친구. 왼쪽부터 찾아주는 이 없어 얼굴만 팔고 사는 배우 영호(이호성), 밤일이 안 돼 남자로서 자존감을 잃은 방송작가 상일(권성덕), 은행지점장까지 지냈건만 마누라 눈치가 보여 등산으로 소일하는 우만(이인철). 사진 제공 극단 산울림
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3관에서 개막한 극단 춘추의 ‘포옹 그리고 50년’에 출연하는 3명의 배우는 모두 예순을 넘겼다. 정진(69) 서권순(64) 최종원(60) 씨.
연출가 문고헌 씨(69)와 극작가 김영무 씨(67) 역시 칠순을 눈앞에 둔 노장들이다.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회장인 김 씨는 “처음부터 농익은 연기가 가능한 60대 배우를 염두에 두고 썼다”며 “우리 연극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나이 많은 사람들만 모여서 만든 작품”이라고 말했다. 배우 정진 씨는 “대사량도 많고 공연시간도 만만치 않아 겁도 났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크다”고 소감을 밝혔다.
산울림소극장 25주년 기념작으로 5월 2일까지 공연하는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역시 노배우 권성덕 씨(69)를 축으로 노년의 삶을 무대화했다. 유명 방송 드라마 PD 출신인 친구가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술만 마시다 숨을 거둔다. 이혼 뒤 혼자 살던 그의 시골집으로 상을 치르기 위해 70대 친구 셋이 모인다. 방송작가인 상일(권성덕), 배우 영호(이호성), 은행지점장까지 지냈던 우만(이인철). 한때 연예계를 주름잡았지만 찾는 이가 없어 적막한 친구의 빈소에서 셋은 노년의 삶에 대한 절절한 체험담과 회한을 토로한다.
극작가 윤대성 씨(71)는 “아무런 준비 없이 고령화시대를 맞은 첫 세대로서 우리 세대의 고민을 증언으로 남기고 싶었다”면서 “방송이나 영화가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게 연극”이라고 말했다. 윤 씨는 은행원 출신으로 ‘수사반장’시리즈를 쓴 방송작가였다. 연출가 임영웅 씨(76)는 “실버연극이라기보다는 우리시대 사람 사는 이야기로 봐줬으면 한다”면서도 “문화 향수의 대상으로서 노인이 아니라 그 주체로서 바라본 작품”이란 점에 동의했다.
지난달 22일부터 매주 월요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윤당아트홀에선 81세 노배우의 모노드라마(26일까지)가 무료로 펼쳐진다. 1950년대 이탈리아 영화실험센터에서 연기와 연출을 배우고 한양대 연극영화과에서 연기를 가르쳤던 양동군 씨의 ‘내일 날이 밝으면’이다. 1960년대 이후 오랜 세월 무대를 떠나있던 그가, 다음 날 아침 죽음을 앞둔 러시아의 노혁명가로 분해 못다 이룬 연기의 꿈을 펼치고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