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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이 버스, 소화기가 없네… 안전항목 빵점”

입력 | 2010-04-06 03:00:00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 현대백화점 정류장에서 마포구 버스구민 평가단으로 활동하는 마정옥 씨(59·여)가 타고 왔던 버스의 서비스 평가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포구

■ 마포 ‘구민평가단’ 암행감찰

승객 가장 마을-지선버스 타
청결-친절도 등 꼼꼼히 채점
구청서 취합해 업체에 통보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성산2동 마포구청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마정옥 씨(59·여)는 타야 할 마을버스가 다가오자 핸드백에서 작은 메모지와 볼펜을 꺼냈다. 노선번호와 현재 시간, 차량등록번호 등을 빠르게 적은 마 씨는 다시 메모지를 숨기고 태연히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친절도나 청결도 등을 평가하는 ‘암행감찰’을 시작한 것. 마 씨는 마포구에서 운영하는 ‘버스구민평가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자도 이날 마 씨와 함께 점검에 나섰다.

○ 기사 친절도부터 버스 청결상태까지

버스에 타면서 마 씨가 운전기사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마을버스 기사가 반갑게 맞았다. 자리에 앉은 마 씨는 습관적으로 창 밖을 응시하는 다른 승객들과 달랐다. 빠르게 버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조금 전에 숨겼던 메모지에 무언가를 재빠르게 적었다. 정확한 노선을 모른 채 버스에 탄 승객들과 버스기사의 대화를 주의 깊게 엿듣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린 곳은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 현대백화점 앞. 시간은 20분가량 걸렸다.

버스에서 내린 마 씨는 ‘버스운행 실태 점검표’ 한 장을 꺼내 열 개 항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잘못된 부분부터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다. “버스기사들은 가슴에 명찰을 달아야 하는데 기사 복장을 보니 명찰이 없었습니다.” 마 씨는 ‘운전자 근무복 착용상태’ 칸에 8점(10점 만점)을 적었다. 시내버스의 경우 복장규정을 잘 지키는 편이지만 마을버스는 아직까지 잘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 손잡이 등 곳곳에 도색이 떨어져나간 것도 감점을 받았다. 마 씨는 ‘시설물 유지상태’ 항목에도 ‘8’을 썼다. 그 외 항목은 모두 10점 만점. 총점은 100점 만점에 96점이었다. “지리를 모르는 승객에게 친절하게 갈아탈 버스를 설명해 줬고 급출발, 급정거 없이 신호도 잘 지켰으니까요.”

같은 장소로 돌아올 때는 마을버스가 아닌 초록색 지선버스에 올라탔다. 마을버스보다 크고 사람도 많이 타는 편이라 마 씨는 더 꼼꼼히 관찰했다. 허리를 굽히거나 일어서서 여기저기 살펴보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린 마 씨는 “마을버스보다 상태가 안 좋다”고 말했다. 운전석 주변에는 꼭 갖춰야 할 소화기가 보이지 않았다. 안전시설물 항목은 0점이 됐다. 창틀을 손바닥으로 슥 닦자 시커먼 먼지도 묻어났다. 청소상태 항목에서 2점 감점, 내릴 때 누르는 벨 중 2개는 전구가 작동하지 않는 것도 마 씨의 눈에 포착됐다. 관련항목 2점 감점으로 총점은 86점.

○ “버스 서비스 질 높이는 것이 목표”

평가단은 평가항목에 없는 각종 민원을 구청에 직접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마 씨는 이날 도착한 신촌 현대백화점 앞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에 쓰레기통이 설치돼 있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벤치와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빈 종이컵 등이 눈에 띄었다. 마 씨는 “젊은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정류장인 만큼 빨리 쓰레기통을 설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포구 주민들로 구성된 버스 구민평가단은 올해 9월 말까지 활동할 예정이다. 생활하면서 탑승한 버스에 대해 차량시설물 관리, 운전자 행태, 차량운전 행태 등 총 10가지 항목을 총 100점 만점으로 평가해 구청에 전달한다. 구는 9월 말까지 평가 결과를 모은 뒤 이를 두 번에 걸쳐 각 버스업체에 전달할 예정이다. 좋은 평가를 받은 버스업체는 정기단속에서 빼주거나 향후 행정처분 수위를 낮춰주는 등 인센티브도 준다. 그러나 심각하게 법규를 위반한 사항이 적발될 때는 필요한 행정처분을 즉시 취할 방침이다. 신영섭 마포구청장은 “단속이나 처벌보다는 계도 중심으로 운영해 버스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