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인문사회]베르사유 궁전 한복판서 키우고 그리스 신들도 즐긴 ‘감귤의 비밀’

입력 | 2010-04-03 03:00:00

◇ 감귤이야기/피에르 라즐로 지음·남기원 옮김/320쪽·1만5000원·시공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시장에 진열돼 있는 오렌지. 이 지역의 오렌지는 ‘오렌지색’이 아니라 초록빛이 돈다. 사진 제공 시공사 

“감귤 씨앗과 나무는 중국 땅에서 수출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지구 전체에서 뿌리를 내렸습니다. 적어도 선생님께 친숙한 적도(赤道) 주변의 온화한 지대에서는 말입니다.”

화학자이자 철학자인 저자는 책 서문에서 송나라 문인 한언직(韓彦直)에게 편지를 띄운다. 한언직은 당시 중국에서 갓 시작됐던 감귤 재배에 관한 전문지식을 담은 책 ‘귤보(橘譜)’를 지은 인물이다. 편지는 이어진다. “감귤의 서진(西進)은 유럽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계 경제뿐 아니라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던, 이 서쪽으로의 이동을 저는 역사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감귤류는 오렌지는 물론이고 탠저린, 만다린, 클레먼타인, 그레이프프루트 등을 모두 포함한다. 감귤류가 처음 유럽으로 들어온 것은 기원전 300년경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 때다. 당시 페르시아에서 재배되고 있던 것을 들여온 것. 지금도 인도 북부에서는 시트론 나무가 야생에서 자란다. 감귤류의 기원은 동양이라는 뜻이다.

그리스에서 다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퍼진 감귤류는 유대교의 신성한 과일로 대접받았다. 유대인들은 지중해로 진출하며 감귤류 역시 함께 퍼뜨렸다. 그리스신화에서 오렌지 나무의 하얀 꽃은 처녀성을, 오렌지는 다산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신화 속 ‘황금사과’가 오렌지라는 설도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의 아랍인들에게 감귤류는 관개농업을 통해 풍요를 가져다준 작물이기도 했다.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20세기 중반이 될 때까지도 오렌지, 레몬 등 감귤류는 크리스마스 때나 맛보는 귀한 과일이었다. 겨울에 열매를 맺는 탓에 서리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베르사유 궁전의 중심에 있는 오랑제리 정원은 ‘오렌지 정원’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15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첫선을 보였던 오렌지 재배용 온실 ‘리모나이에’가 이 오랑제리 정원의 원형이다. 루이 14세는 태양을 연상시키는 오렌지 나무를 좋아해 오랑제리 정원에서 많이 길렀다.

감귤류는 미국과 브라질에서 재배되면서 비로소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남부와 마이애미는 기후, 토질, 지형에서 오렌지 재배의 최적지였다. 풍요롭고 달콤한 오렌지의 이미지는 이 지역을 새로운 정착지이자 관광지로 홍보하는 데 활용됐다. 당시 건설된 대륙횡단철도와 골드러시는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잘 자라는 ‘네이블오렌지’를 미국 전역으로 퍼뜨렸다. 특히 ‘오렌지를 마셔요’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등장한 오렌지주스는 건강에 좋다는 인식과 함께 전 세계로 퍼졌다.

책은 감귤류의 역사와 전파 과정은 물론이고 감귤류의 화학적 성분, 감귤류를 재료로 사용하는 각종 요리법, 언어 속에 나타나는 감귤류의 상징적 의미, 그림 속에 나타난 감귤류의 이미지까지 담고 있다. 신성한 과일에서 세계인의 아침식탁에 오르기까지 ‘문화 아이콘’으로서의 감귤류를 다루고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