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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일과 삶]정우영 혼다코리아 사장

입력 | 2010-04-03 03:00:00

한발 두발 산 오르며 ‘순응경영’ 배운다

30∼40 대가 주로 산행파트너… 신선한 아이디어 경영에 도움
등반 3년만에 히말라야 올라




 올 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해발 4160m)를 오르고 있는 정우영 혼다코리아 사장. 정 사장은 당시 90km의 등산로를 4박 5일간 쉬지 않고 걸었다. 사진 제공 혼다코리아

‘일본계 회사의 60대 최고경영자(CEO)라면….’ 정우영 혼다코리아 사장(61)을 만나기 전 왠지 절제되고 보수적인 스타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자의 선입관은 그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단번에 깨졌다.

으레 사장 집무실 하면 떠오르는 널찍한 방과 호화로운 가구세트, 비서 등은 온데간데없고 칸막이도 없는 단출한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바로 옆에는 수십 개의 임직원 책상이 마치 생산라인처럼 탁 트인 공간에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 회사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정 사장의 말과 행동을 근무시간 내내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는 셈이었다. 이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실용성을 추구하는 정 사장의 성품을 고스란히 닮았다.

○ 산행 파트너는 젊은이

그의 소탈함은 평소 취미생활인 고산(高山) 등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뒤늦게 2007년부터 시작했지만 이제는 히말라야까지 오를 정도의 실력을 갖춘 마니아다. 함께 산에 오르는 기업 CEO 등 지인을 물었더니 “일부러 아는 사람과는 산에 가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첫째는 힘껏 산에 올라 건강을 다져놓고는 내려와서 막걸리라도 걸쳐야 하는 이른바 ‘아저씨 산행’이 싫고 둘째, 젊은 사람들과 꾸준히 어울려야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함께하는 고산 등반대에선 정 사장이 최고 연장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지난해 동북아시아 최고봉인 대만 위산(玉山·해발 3952m)과 동남아 최고봉인 말레이시아 키나발루(4101m)에 이어 올 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베이스캠프(4160m)를 등정할 때에도 그랬다. 30, 40대 젊은 남성이 대부분인 등정대에서 정 사장은 최고령자로 90km의 거리를 4박 5일간 쉬지 않고 걸었다. 엄청난 체력의 비결을 묻자 그는 “등산에 필요한 근력을 키우려고 일주일에 세 번 헬스장에서 어깨와 무릎 근육운동을 집중적으로 하고 매주 청계산을 비롯한 가까운 산에 오른다”고 답했다. 통상 60대는 건강을 지키려고 운동을 한다는데 정 사장은 고산 등정에 초점을 맞춰 몸을 훈련시키는 듯했다.

○ 3년 만에 히말라야 오른 비결은

그는 무얼 하더라도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등산을 취미로 삼기 전에는 낚시를 즐겼는데, 한때 특정한 포인트를 잡아놓고 두 달 동안 그 자리만 지켰던 적도 있다. 시작한 지 불과 3년 만에 고산병을 이겨내고 해발 4000m 이상을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등산의 기초부터 탄탄하게 다졌기에 가능했다.

정 사장이 처음 등산에 매력을 느낀 것은 2007년 1월 1일 혼자서 떠난 여행길에서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부산을 시작으로 전남 강진과 해남, 영암을 거쳐 속리산에 들어갔다. 새벽녘 잠에서 깨어보니 일군의 대학생이 눈 때문에 위험하다며 애써 온 길을 되돌아갔다. 그때 정 사장은 ‘그래도 해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이젠도 없이 무작정 문장대까지 올라갔다. 몇 시간의 고투 끝에 정상을 밟았을 때의 짜릿한 기분을 난생 처음 느꼈다고.

두 달 뒤 강원도 두타산을 무리하게 오르다가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등산을 하다 발목을 삐고 저체온증까지 걸려 큰 변을 당할 뻔했던 것. 여기서 잠시 주춤할 법도 했지만 그는 오히려 오기가 생겨 바로 다음 달 사내에 산악회를 만들고, 전문 산악강사를 불러 체계적인 등산교육을 받았다. 이마저 성에 차지 않자 정 사장은 혼자 코오롱등산학교에 입학해 독도법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초 및 고급과정을 모두 이수했다.

○ 산에 오르며 깨달은 경영철학

그는 “등산할 때마다 산을 이기겠다는 생각보다 적응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차근차근 오른다”면서 자신의 경영철학도 이와 닮았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히트 상품을 내놔 시장을 석권하는 것이 아닌, 고객의 소리에 순응하면서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것. 그는 작은 물통 하나를 준비하지 않아 탈수증으로 쓰러지는 등산객을 언급하면서 “산에 오르면서 준비한 만큼의 결과만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기업도 매사 소박하게 그리고 빈틈없이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 사장은 판매딜러들을 만날 때마다 ‘판매보다 고객만족이 우선’이라는 메시지를 늘 강조한다. 그는 “기업이 파는 것에만 몰입하면 편법과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며 “압도적인 고객만족(CS)으로 혼다코리아만의 색깔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이런 맥락에서 정 사장은 “지난해 엔화 환율 급등으로 가격을 올려 본의 아니게 소비자께 불편을 드린 것은 사실”이라며 “올해는 원가절감 노력과 더불어 하이브리드차인 인사이트를 국내에 출시해 혼다의 위상을 새로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끝내며 앞으로의 등정 목표를 묻자 정 사장은 “더 늙기 전에 올해는 4박 5일로 북알프스를 종주하고 내년에는 킬리만자로와 몽블랑 정상을 밟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새하얀 알프스의 설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정우영 사장은 ▼


― 1949년 대전생
― 1968년 2월 서울 중앙고 졸업
― 1975년 8월 성균관대 금속공학과 졸업
― 1976년 기아기연공업주식회사(기아차-혼다 합자법인) 입사
― 1981년 2월 성균관대 무역대학원 경영학 석사
― 1996년 대림자동차공업㈜ 이사
― 2000년 1월 대림자동차공업㈜ 전무(공장장, 연구소장)
― 2000년 1∼11월 대림자동차공업 ㈜ 대표이사
― 2001년 11월 혼다모터사이클코 리아㈜ 대표이사
― 2003년 3월∼현재 혼다코리아㈜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