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독자들이 말하는 동아일보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에 사는 황기도 씨(50)는 동아일보가 90주년을 맞았다는 얘기를 듣고 부친 황대욱 옹(2006년 작고·96세)을 떠올렸다. 황 옹은 매일 아침 2km 떨어진 지국에서 배달돼 오는 동아일보를 목을 빼고 기다렸다. 어쩌다 날이 추워 배달부가 오지 않는 날이면 50세가 넘은 아들이 직접 지국까지 신문을 가지러 가야 했다. “신문이 안 오면 아버지 역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고 황 씨가 웃으며 말했다.
○ 2대째 동아일보, 60년 반려자인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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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마산시 진동면 진동리에 사는 서원태 씨(96)도 60여 년째 동아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6·25때 전쟁을 피해 거제도로 피란을 갔다 돌아왔는데 그 경황 중에도 동아일보는 꾸준히 배달돼 왔다고 한다. 서 씨 부인 정옥필 씨(84)는 “이제는 신문이 오지 않으면 불안할 지경”이라며 “이 양반이나 나나 아침만 되면 신문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남편 서 씨는 2년 전 동아일보에 이름도 올렸다. 2008년 2월 김병관 명예회장이 작고했을 때 오랜 애독자로서 조전을 보낼 방법을 찾다가 그냥 무작정 회사로 전화를 걸어 사연을 전한 것이 기사화된 것.
▶본보 2008년 3월 1일자 A28면 참조
한의사協광고로 추모 94세 애독자 조의 표해
서 씨는 “당시 내가 나온 기사를 오려 우리 집 벽에 액자로 걸어 붙여 놨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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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시절 동아일보를 보며 민주시민사회를 갈망했던 청년은 어느덧 필진이 됐다. 객원논설위원으로 본보 칼럼을 쓰는 서울대 윤리교육학과 박효종 교수(63)는 “동아일보는 내게 조강지처 같은 신문”이라며 미소지었다.
박 교수는 고교 때부터 동아일보를 봤다. 35년 전 어지러웠던 시절 가톨릭대를 다니던 중에는 동아일보에서 서울대 대학원에 국민윤리교육과가 생긴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공을 돌려 대학원에 지원하기도 했다. 이후 30년 넘게 박 교수는 동아일보와 함께 했다. 조강지처라도 세월이 지나면 애정도 식고 보는 눈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그는 “독자로서 동아일보를 바라보는 눈과 필진이 되어 바라보는 눈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예나 지금이나 동아일보는 여론에 좌고우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애독자들의 바람
1983년부터 27년째 자비를 털어 6·25 참전용사들의 추모제를 지내고 있는 백골전우회 회장 최수용 씨(81)는 20년 가까이 동아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최 씨는 “앞으로도 중론에 휩쓸리지 않고 거리낌 없이 바른 말을 하는 신문이었으면 한다”고 동아일보에 대한 바람을 털어놨다. 1950년 12월 1일 북한 청진에서 왼쪽 다리에 포탄 파편을 맞아 오후 전투에 참가하지 못한 최 씨는 그날 160명의 전우를 잃었다. 당시 최 씨가 있던 18연단 2대대 6중대 소속 전투원들이 교란작전 과정에서 무전기를 꺼 놔 후퇴명령을 듣지 못해 전멸한 것. 이후 ‘혼자만 살았다’는 심적 부채감에 시달리던 최 씨는 농사일을 하며 번 돈을 모아 울산 울주군 온산읍 화산리에 백골부대 성역지를 마련하고 추모제를 열었다. 6월 초 백골부대 전우들을 모아 연 추모제는 어느덧 30주년을 향해가는 연례행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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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