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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합창 지휘엔 ‘섬김의 리더십’ 가득

입력 | 2010-03-27 03:00:00

마포구립합창단 ‘남성 전유물’ 편견 깨고 여성 지휘자 발탁
김은실 씨 “국내 지휘공부 70%가 여학생… 롤모델 되고 싶어”




 여성이 진출하기 어려웠던 합창 지휘에 도전해 꿈을 이룬 김은실 씨. 그는 “국내에서 지휘를 열심히 배우고 있는 여학생들의 길을 터주기 위해서라도 마포구립합창단을 정상급 수준으로 끌어올릴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서울 마포구

음악계는 다른 분야에 비해 보수적인 편이다. 그중에서도 지휘 쪽은 특히나 더 남초 현상이 나타나는 분야다. 나비넥타이에 검은색 연미복을 차려입은 남성 지휘자의 이미지는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국내에서 여자 지휘자는 여전히 낯선 직업이다.

그나마 오케스트라 지휘는 장한나 씨처럼 잘 알려진 경우도 일부 있지만 합창단 지휘는 여전히 남성의 전유물에 가깝다. 서울시합창단을 비롯해 관에서 운영하는 전국 대부분 합창단의 상임 지휘자는 남자다. 아마추어로 구성된 소년소녀합창단이나 구립 합창단도 마찬가지다. 두꺼운 ‘유리천장’과 오랜 편견을 넘어 김은실 씨(45)를 첫 여성 상임지휘자로 발탁한 마포문화재단의 ‘실험’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자 우리 단원님들, 이 부분은 약간 콧소리 섞어서 부르셔야 하는 거 아시죠?” 23일 찾은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다목적실에선 피아노 반주 소리와 함께 김 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나오는 마에스트로처럼 까칠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김 씨는 단원들에게 꼬박꼬박 깍듯하고 가끔은 애교도 섞인 존댓말을 썼다.

성악에 관심이 있는 아마추어 구민들로 구성된 마포구립합창단은 2003년 창단 이래 그동안 남자 지휘자만 거쳐갔다. 김 씨는 이달 9일 28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연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미국 남캘리포니아대에서 합창지휘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 씨는 귀국 후 자리가 날 때마다 전국 곳곳 합창단에 지원했다. 하지만 결과는 번번이 낙방이었다. “저보다 스펙도 떨어지고 경험도 부족한 남자 후배들은 척척 붙는데 계속 떨어지니까 속상했죠. 운 좋게 면접까지 가더라도 매번 음악과는 관계없이 여성인데 괜찮겠냐는 우려부터 하시더라고요.”

합창단을 운영하는 마포문화재단 역시 사실 그를 채용하기 전 많은 고민을 했다. 합창 분야가 워낙 보수적인 데다 시 합창단은 물론 다른 24개 자치구 모두 남자 지휘자들이라 선뜻 뽑기가 쉽진 않았던 것. 김 씨는 마지막 최종 개인 면접을 45분 넘게 봤을 정도다. 신영섭 재단 이사장(마포구청장)은 “실력을 가장 우선시해 나온 결과”라며 “단원들과 무리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성격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첫 여성 지휘자를 맞은 합창단원들은 남자 지휘자들과 달리 김 씨에겐 특유의 ‘섬김’ 리더십이 있다고 입을 모아 극찬했다. 오나현 단원은 “남자 지휘자들의 카리스마 리더십에 비해 김 지휘자는 감수성도 풍부하고 엄마같이 세심하게 챙겨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나 역시 아줌마니까 특히 여성 단원들이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여성으로서의 단점이 물론 있겠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직접 몸을 움직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합창단 지휘를 마치고 오후엔 서강대와 성신여대, 총신대 등으로 강의를 나간다. 그는 “현재 국내에서 지휘를 공부하는 학생 중 70%가 여학생”이라며 “나를 롤모델로 삼는 여자 후배들의 길을 터주기 위해서라도 마포구립합창단을 시립 못지않은 실력 있는 합창단으로 키워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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