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김용석 기자 특별단속반 일일체험
등산객의 출입이 통제된 북한산 상장능선에 난 샛길. 샛길이 한번 생기면 경사면이 침식되고 수목 뿌리가 노출되는 등 자연훼손이 계속된다. 또 쉽게 원상회복되지 않아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김용석 기자
일부 등산객 코스 가로질러
작년 개방이후 훼손 심해져
멧돼지 등 동물 서식지 잃어
“쉿!” 약 500m 높이의 상장능선에 올라 숨을 고르던 단속반원들이 갑자기 숨을 죽였다. 멀리서 낙엽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기다리니 소리가 멀어졌다. 단속반은 빠른 걸음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쫓았다. 하지만 소리의 주인공을 찾지 못했다. 이런 숨바꼭질은 자주 벌어진다고 했다.
“등산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능선에서 단속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낌새를 채고 멀리 피해 다닙니다. 능선 밑 길이 없는 곳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단속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북한산관리사무소 우이분소 지형우 주임)
지난달 27일 북한산 우이령길에서 등산객 위반행위 단속에 나선 국립공원관리공단 특별단속반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용석 기자
○ 개방 6개월 만에 샛길 하나둘 생겨나
개방 전부터 존재한 샛길 4개 외에도 상장능선, 도봉주능선에서 우이령으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새로운 샛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중 한 곳을 보니 길 주변에 심어놓은 나무가 조금 훼손됐다. 길 위를 덮은 낙엽도 흩어져 허연 흙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샛길이 한번 생기면 훼손이 점점 커진다. 지표수가 증가해 배수로가 생겨난다. 길 주변이 깎여 나간다. 마치 분지처럼 변하기도 한다. 주변 나무와 풀의 뿌리가 노출되고 길의 폭은 점점 더 확대된다. 이로 인해 길 양쪽의 생태계가 분리되는 피해가 생겨난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가장 많은 등산객이 찾는 북한산은 74개(총연장 160km) 탐방로 외에 365개(총연장 222km)의 샛길로 훼손되고 있다. 샛길은 북한산을 605조각으로 나눈다. 면적이 더 큰데도 491조각으로 나뉜 지리산과 비교하면 북한산은 갈가리 찢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관리공단은 샛길과 탐방로를 폐쇄하는 방식으로 북한산의 조각을 90개, 35개로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기로 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단속을 위해 우이령길을 벗어나 상장능선 쪽으로 향했다. 길도 없는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자마자 움푹 파인 진흙 구덩이가 나타났다. 구덩이 안에서 가마니를 이리저리 굴린 듯한 자국이 보였다. 멧돼지가 진흙 목욕을 한 흔적이다. 구덩이 앞에는 밤톨만 한 멧돼지 배설물이 널려 있었다.
상장봉을 중심으로 한 북한산 지역은 수십 년 동안 등산객 출입이 금지돼 멧돼지, 산토끼, 너구리, 대륙족제비, 고슴도치, 두더지 등의 좋은 보금자리가 됐다. 멧돼지가 살려면 10∼20km²의 생활공간이 확보돼야 한다. 샛길로 605조각으로 나뉜 북한산의 조각당 평균 면적은 0.13km²에 그친다. 멧돼지는 물론이고 두더쥐 생활권(2km²)이나 다람쥐 생활권(3.9∼6.8km²)에도 훨씬 못 미친다. 관리공단 보고서에 따르면 생활공간 파편화로 서식지 면적이 감소하면 일부 동물이 격리돼 멸종할 수도 있다.
북한산관리사무소 이원후 주임은 “열매를 먹은 뒤 배설물을 통해 식물을 이곳저곳으로 퍼뜨리는 동물의 역할은 숲을 건강하게 하는 데 필수”라며 “비교적 넓은 공간이 보전된 상장봉 주변 지역마저 샛길로 분리되면 멧돼지 등 북한산의 동물은 갈 곳이 없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