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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카페]새 회계제도 IFRS는 ‘투자자의 무덤’?

입력 | 2010-02-24 03:00:00

기업 재량권 대폭 인정
애널리스트 투자판단 곤혹
회계업계는 일감 늘어 미소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27개 상장사가 올해 1분기부터 새 국제회계기준(IFRS)을 적용하기로 하자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습니다. 새 회계제도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규정 중심’이 아니라 기업별로 알아서 정리하라는 ‘원칙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단답형 회계장부를 써왔다면 이제는 논술식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죠.

애널리스트들은 공부모임을 만들어 국제재무분석사(CFA) 같은 전문가들을 초빙해 강의를 듣지만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핵심 재무지표인 영업이익 하나만 보더라도 지금까지는 같은 업종에 있는 기업들을 동일한 잣대로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업마다 영업이익의 산정방법이 다르고 심지어 이를 표기하지 않는 기업도 나올 수 있어 일률적인 비교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새 제도로 작성한 연결재무제표의 분량은 기존 재무제표의 5분의 1에 불과합니다. 대신 상세한 설명과 근거를 별도 주석으로 표기하도록 했습니다. 기업에 따라 1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주석을 속속들이 읽고 그 내용이 향후 해당 기업에 미칠 영향까지 가려내야 하기 때문에 애널리스트들의 부담은 더 커졌습니다. 한 애널리스트는 “애널리스트들은 각자 보유한 기업분석의 틀이 몸값을 결정하는 핵심요소인데 이 틀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돼 그야말로 ‘카오스’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업무 부담감에 이직을 고려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귀띔하더군요.

이렇다 보니 한 기업의 회계장부를 토대로 한 보고서의 결론이 정반대가 될 가능성도 커졌습니다. 주석의 특정 내용을 미처 보지 못했거나 그 의미를 잘못 파악하면 매도할 기업을 매수하라고 투자의견을 낼 수도 있는 것이죠. 만약 이런 보고서를 근거로 주식에 투자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가 부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 제도가 ‘투자자의 무덤’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반면 새 제도 도입으로 5000억 원가량의 새로운 시장을 확보한 회계 및 솔루션 업계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2, 3년 전부터 전담조직을 갖추고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에 돌입한 국내 ‘빅4’ 회계법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작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중소 상장사들입니다. 해외에 있는 소규모 공장의 실적을 반영해야 하지만 회계 전문 인력이나 시스템을 활용할 여력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금융당국과 한국회계기준원은 새 제도에 대해 질의를 받지 않겠다는 기존 방침을 바꿔 올 초부터 질의, 회신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새 제도가 연착륙하려면 자금 지원이나 투자자 교육 같은 활동을 함께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미국이나 일본보다도 앞서 새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일각의 반대 목소리도 가라앉고 한국기업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겠다는 취지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혜진 경제부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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