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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집중분석] 명품다큐, ‘아마존의 눈물’… 그 성공 뒤 빛과 어둠은?

입력 | 2010-02-11 16:00:00

인간의 탐욕이 어떠한 파괴를 불러오고 있는지 치열하게 그려낸 명품다큐 ‘아마존의 눈물’. 사진제공 MBC.


'하늘도 바다도 잿빛인 지구. 이 땅 위에 생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굶주리던 사람들은 급기야 서로를 잡아먹는 인간 사냥꾼으로 변한다….'

이는 얼마 전 개봉한 '더 로드'라는 영화 속 지구의 모습이다.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코맥 맥카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대재앙이 지나간 지구의 황폐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일명 '명품다큐'라는 찬사를 받으며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인 시청률을 보인 '지구의 눈물' 시리즈는 바로 이러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을지도 모를 지구의 현주소를 되짚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아마존의 눈물' 은 간판 오락프로그램을 제치고 시청률 22.5%를 기록, '흥행'면에서도 '명품'으로 꼽혔다. 사진제공 MBC.


▶ '웰메이드 다큐'가 전하는 깊은 울림의 메시지

2008년 시리즈의 첫 편인 '북극의 눈물'이 방송된 후 약 1년 만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해 총 5편으로 이루어진 '아마존의 눈물'(MBC)이 다시 한번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북극의 눈물'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녹아가는 빙하와 생존의 위기에 처한 북극곰의 절망을 잔잔히 담아냈다면, '아마존의 눈물'은 인간의 탐욕이 아마존에 어떠한 파괴를 불러오고 있는지를 치열하게 그려냈다.

문명이라는 허울아래 무참히 공격당한 원주민들, 식용 소 사육을 위해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방화, 금을 캐기 위해 대대적으로 벌어지는 강물의 오염….

우리의 안방극장으로 파고든 이 장면들은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은 해도 구체적으로 실감은 하지 못했던 환경파괴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를 체감하게 해 주었다. 우리가 방관하는 사이 지구가 어떻게 병들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파괴가 어떤 부메랑으로 우리에게 돌아올지 경각심도 일깨워줬다.

그 동안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알려 주기 위해 많은 단체들이 시위나 퍼포먼스를 했고 언론 역시 이를 빈번하게 보도했다. 수많은 연구서와 보고서도 발표됐다. 하지만 이번 '아마존의 눈물'은 그간의 어떤 경고보다도 대중들에게 더 큰 호소력을 발휘했다.

시청자들은 수백 년을 이어온 원주민의 뿌리를 한 순간에 흔든 문명의 병이 얼마나 지독한지 목격했고, 전 세계 산소의 20%를 생산해낸다는 아마존의 정글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지 똑똑히 바라보았다.

잘 알 수 없는 그래프의 조합이나 지루하기 쉬운 뉴스보다는, 잘 만든 다큐 한편이 '환경보호'라는 거대 담론에 대한 구체적인 의식변화를 이끌어내는 초석이 된 것이다. 이게 바로 다큐멘터리의 존재 이유이자, 힘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아마존의 눈물'은 큰 의미를 갖는다. 1년이 넘는 제작기간과 15억 원이 넘는 제작비. 장기적인 투자로 이루어진 잘 짜인 구성과 심도 있는 취재. 그 동안 BBC 나 NHK 등 해외 방송국의 다큐 수입에 적지 않게 의존해왔던 우리나라도 이제는 우리의 시각으로 보고 우리의 말로 이야기하는 '웰메이드 다큐'의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시 말해 '아마존의 눈물'은, 국내 다큐멘터리가 질적으로 한 단계 성장했음을 증명한 사례인 것이다.

독립 다큐 '워낭소리'는 29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이 장르 영화들의 '흥행 공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러나 로또와 다름없는 수익을 내면서 예견치 못한 논란과 혼란에 휩싸였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 '워낭소리'의 딜레마를 보라

뜬금없어 보이겠지만 여기서 잠시 지난 해 이맘때를 돌아보자. 우리는 당시 '워낭소리'라는 독립 다큐의 신화에 열광하고 있었다.

'워낭소리'의 흥행이 시작되면서 원래 예상됐던 시나리오는 이랬다. 예술영화전용관에서 흥행→ 일반 상영관으로의 확장 개봉→ 장기상영 돌입→ 제작비 만회→ 수익 발생 (= 다음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종자돈 마련)→ 독립 다큐멘터리에 대한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분위기 조성.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영화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이 영화의 최종 극장 스코어는 290만. 독립 다큐멘터리로서는 로또에 당첨된 것과 다름없는 수익을 내면서 이 영화는 전혀 예견치 못한 논란과 혼란에 휩싸였다.

초대형 복권당첨금을 두고 일어난 업계 일각의 밥그릇 싸움이라든가 지극히 사적으로 보이는 흉흉한 소문들은 그저 한번 지나가는 감기쯤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이 작품의 흥행이 독립영화 전체를 구원할 그 무엇으로 성급하게 확대 재생산됐다는 데 있다.

'워낭소리'는 불안한 수익구조를 가진 한국 상업영화의 대안이 되기도 했고, 늘 배고픔에 시달리는 독립영화의 살 길로도 거론됐으며, 결국엔 한번도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독립영화 전체를 정의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기도 했다.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았던 흥행 돌풍 속에서 개별작품의 흥행과 독립영화 전체의 미래는 다르다는 사실은 잊혀져 버렸다.

결국 모든 독립 다큐멘터리는 자본의 성공을 이룬 '워낭소리'와 동일한 기준에 의해 일률적으로 평가되었다. 적지 않은 수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워낭소리'의 성공을 모방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민간 투자나 공적 지원도 '워낭소리'를 모델로 해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워낭소리'가 아닌, 아니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는 대다수의 영화들은 더욱 빈곤해지는 딜레마에 빠졌다. 기본적으로 '지원'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독립영화가 '수익창출'에 목을 메야 하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9개월간 추적한 지구 온난화의 상처를 그린 MBC '북극의 눈물'의 한 장면. 사진제공 MBC.


▶ 다큐멘터리 대박 성공의 환상?

다시 '아마존의 눈물'로 돌아와 보자. 이 작품은 아이돌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는 동 시간대 예능 프로그램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20% 대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우면서 그야말로 국내 TV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다시 썼다는 평을 들었다.

지루하거나 딱딱하다는 편견에 시달려온 다큐멘터리의 대중적인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인기 속에 공중파 다큐멘터리로서는 최초로 극장판으로 재제작된 '북극의 눈물'에 이어, 3월 말이면 스크린으로도 옮겨진다.

하지만 이런 축제분위기 속에서도 온전히 기뻐할 수만 없는 것은, 환경은 조금 다를지 모르나 태생은 비슷한 '워낭소리'의 선행학습의 효과 때문일 것이다.

'아마존의 눈물'이 높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자 부쩍 부각된 것은 바로 이 작품의 상업적인 측면이었다. 직접 제작비와 간접 제작비가 계산되고 제작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지, 제작비의 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만큼 큰 투자와 수고와 노력의 산물이라는 데 방점이 찍힌다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자본의 관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시청률은 곧 광고와 직결된다. 높은 시청률에 힘입어 다큐멘터리로서는 최초로 광고가 '완판'되었고, 이로 인해 최초로 제작비를 만회했으며, 추가 판권시장까지 포함한다면 '대박 수익'이라는 분석과 보도가 줄줄이 나오고 있다.

해외 수출 가능성도 점쳐지는 동시에, 설 연휴에 재방송이 확정되면서 이에 따른 추가 광고수익까지 추정 합산되는 중이다.

그러나 수익성의 잣대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장르가 바로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줄 수 있으나 '세상을 사는 돈'을 만들어내거나 '돈이 되는 유행'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가 다르듯,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는 다르다.

'워낭소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마존의 눈물'이 가져온 상업적 성공이 TV 다큐멘터리의 근본적인 성공여부를 평가하는 성급한 표준이 된다면, 다큐멘터리는 더 이상 다큐멘터리가 될 수 없다. 그것은 환상일 뿐이다.

수치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다큐멘터리의 본질과 의미. 그것이 자본적인 시각으로 재단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지금까지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해야 할 TV 다큐멘터리의 '공영성'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아마존의 눈물'이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오히려 다큐멘터리의 생존과 발전을 보장받는 성공의 예시가 되길 기대해 본다.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마존의 눈물' 이전에는 '누들 로드'가 있었고 '차마 고도'가 있었으며 '갯벌은 살아 있다'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들은 큰 대중적 관심을 받거나 수익을 창출해내지는 못했지만, 많은 패러다임을 바꿔놓았고 정책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또한 오늘날 '아마존의 눈물'이 제작될 수 있는 발전적 토양이 되었다는 것을.

'아마존의 눈물'이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간들이 맹목적으로 자본의 논리만을 추구하고 공생보다는 탐욕을 쫓는 한, 지구는 계속 눈물을 흘릴 것이다. 이는 북극의 얼음과 아마존의 정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다큐멘터리의 가치와 이를 지킬 수 있는 건전한 제작환경에도 해당된다.

이 모든 걱정이 단지 섣부른 기우이기를 바라면서, '아마존의 눈물' 속 대사 한 줄을 되뇌어 본다.

'사라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정주현 janice.jh.ch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