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루이, 김정일 만나후진타오 방중요청 전달
이에 앞서 왕 부장은 8일 함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북-중 관계와 6자회담 재개 문제를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왕 부장에게 “한반도 비핵화 실현은 북한의 일관된 방침”이라며 “6자회담을 재개하려는 관련국들의 성의 있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왕 부장에게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받은 뒤 이같이 말하고 이를 위해 중국과 의견 교환 및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언급은 지난해 10월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를 만나 “미국과의 양자회담 진전에 따라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과 비교하면 원론적인 발언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 위원장과 왕 부장의 면담이 6자회담보다는 중국의 대북 원조 등 양자 현안에 집중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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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의 방중 시기도 관심거리다. 왕 부장은 8일 김 위원장에게 후 주석의 중국 방문초청 의사를 전했다. 후 주석은 구두 메시지에서 “중국의 당과 정부는 북-중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며 “편리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해 달라”고 밝혔다. 이번 초청은 지난해 1월 왕 부장 방북 때에 이은 두 번째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조만간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김 위원장은 올해 초 중국을 방문할 계획을 검토했지만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기류가 북한에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방중을 미뤘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방중을 결정한다면 그 자체로 북한이 모종의 결단을 내렸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일 방중, 내달 中전국인대 직후 가능성
“경제난 타개 기회”… 6자 복귀 타진할듯
김 위원장은 방중을 통해 경제난 타개와 안정적인 권력 승계, 나아가 대외관계 개선을 위한 기회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방중이 3월로 예정된 중국 공산당의 최대 행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직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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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의 악화된 경제사정을 감안할 때 북한이 무한정 6자회담을 거부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로 국제사회가 북한과의 거래를 외면하고 북한의 무기밀매도 차단되는 상황에서 이뤄진 화폐개혁은 북한 경제를 대혼란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평양에서 자동차로 5시간 걸리는 함흥의 경제시찰 현장에서 왕 부장을 만난 것도 북한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선 중국의 경제적 도움이 절실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왕 부장에게 “북한의 국내 경제는 전체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면서 “몇 년간의 노력으로 철강 기계 광업 분야 등에서 생산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이지만 나름대로 북한이 내부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중국의 투자를 요청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날 면담에 배석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북한의 대외투자유치 창구로 떠오른 ‘조선대풍투자그룹’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어 북한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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