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실존 모델 美패션잡지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
별명은 ‘핵폭탄’과 ‘얼음공주’. 즐기는 브랜드는 ‘샤넬’과 ‘마놀로 블라닉’. 세계 패션계를 쥐락펴락하는 애나 윈투어 미국 ‘보그’ 편집장. 사진 제공 미로비전
한국에서 온 기자뿐이랴. 전 세계 패션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자체로 패션계의 빅뉴스가 된다. 최근 국내 개봉한 영화 ‘셉템버 이슈’는 그를 소재로 그가 직접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2007년 보그 9월호(셉템버 이슈)는 1892년 보그가 창간된 이후 가장 두꺼운 분량을 펴냈다. 전체 840쪽 중 727쪽이 광고였는데, 이는 패션 산업에 대한 애나의 입지전적 위치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관록의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가 연기했던 패션잡지 편집장은 만인이 알고 있듯, 애나를 모델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보그 코리아’가 e메일 인터뷰로 애나에게 그 영화를 본 소감을 묻자 “당신이 본 것을 모두 믿진 마세요”라고 답했다. “‘패션 잡지는 소비를 조장하는 쓰레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이란 질문엔 “아마 그들은 ‘보그’를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을 거예요. 스타일, 정치, 문화, 잘 사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그’에도 관심이 있을텐데요. 물론 잘 사는 것이 꼭 비싸고 화려하게 사는 걸 의미하진 않아요”라고 답했다.
글 쓰는 능력은 형편없었지만 유명 포토그래퍼와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탁월한 안목으로 당대의 패셔너블한 화보 촬영을 주도했다. 그는 영화 ‘셉템버 이슈’에서도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민소매 원피스 위에 얌전한 카디건을 걸친 스타일을 여럿 선보였다. 젊을 적부터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그는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의 패션’, 즉 얌전하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패션쇼를 보고 있는 애나 윈투어. 사진 제공 미로비전
애나는 예나 지금이나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테니스를 친 후 전문가로부터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단발머리 손질과 결코 짙지 않은 화장을 맡긴 뒤 8시에 보그 사무실로 출근한다. ‘셉템버 이슈’ 끝 부분에서 촬영진이 묻는 세 가지 질문과 그의 답변은 이렇다.
Q: 당신의 강점은? A: 결단성
Q: 당신의 약점은? A: 아이들(이혼한 애나에겐 두 자녀가 있다)
기자는 애나가 말한 ‘백핸드 기술’이 단순히 테니스 기술만을 뜻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패션 카리스마는 어쩌면 이 땅의 여성들에게 정교한 백핸드 기술의 가르침을 줄 수도 있으리라. 기회를 포착하고 확장하라, 연애는 놀이처럼 즐겨라, 가십은 실력과 열정으로 돌파하라, 늘 젊은 감각과 자부심으로 무장하라, 소문과 평판에 의연해져라, 더 높은 자리를 열망하라, 스타일은 개척하는 자의 것이다….
P.S. 기자가 애나를 본 순간들엔 늘 그에게 붙어 잘 보이려는 남자들이 있었다. 유명 디자이너든, 백화점 고위 관계자든. 별명이 ‘핵폭탄’이건 ‘얼음공주’건 뭐 어떤가. 영국 ‘가디언’은 그를 ‘비공식 뉴욕 시장’으로 명명했으니….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