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식사/전경린 지음/252쪽·1만 원·문학동네
소설은 크게 한 여자와 그녀를 둘러싼 두 남자의 관계를 축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누경은 첫 만남에서부터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매료당한 남자 기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예민하고 제멋대로인 데다 사람의 마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에겐 남들이 알지 못하는 상처가 있다. 그 상처의 진원에 또 다른 남자, 서강주에 대한 기억이 버티고 있다. 먼 친척 오빠뻘인 그는 어린 시절 누경네에 머물렀었다. 오랫동안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다가설 수 없었던 그를 누경은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다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애초부터 원만할 수 없었다. 그의 아내가 위암 수술을 받으면서 그들은 예정된 이별을 밟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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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안에 나오는 사랑은 하나같이 빗나가는 것들뿐이다. 때때로 안타까움, 먹먹한 비애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청승맞거나 구슬프진 않다. 소설은 사랑이 꼭 누군가를 향해 수렴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실의 남겨진 것들을 보듬으면서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작가의 말’에서 전 씨는 이렇게 썼다. “과거의 짐과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독립해 온전하게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초월적인지…평정을 유지하며 현재성 속에서 능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야말로 소박한 초인이 아닐까.” 거창한 의미나 결실 같은 건 없어도 좋다. 소설의 누군가가 말하듯 사랑도 삶도 “있었던 일 그대로 좋은 시간”일 것이므로.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