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왜 이처럼 위법한 처분을 했을까? 아마도 용산 사건 피고인의 인권에 대한 고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용산 참사에는 분명 복지에서 소외된 사람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국가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재판부의 복사 허용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더 많이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그런 귀 기울이기의 일환일 수 있다.
사법부의 귀 기울이기는 법치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테두리를 벗어난다면 용산 참사에서 희생된 경찰이 수호하려 했던 법치의 이념이 무너지고 그들의 죽음도 헛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번 복사 허용을 합법으로 본 듯하다. 이 기록에 대한 1심 재판부의 공개결정이 있었고 변호인에게 열람·등사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고사건이 아닌, 아직 기소도 되지 않은 관련 사건의 기록에 대해서까지 형사소송법이 열람 등사권을 인정한다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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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의 이번 조치에서 우리는 현대국가의 오래된 딜레마를 떠올리게 된다. 법치와 복지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다. 재판부는 개발과 법치의 이념에 밀리기 쉬운 복지와 민주의 이념을 바라본 듯하다. 그런 시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치가 없이는 공정한 복지도, 참여적 민주도 결코 가능한 것이 아님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형사소송법이 검찰에게 보장한 수사전문성과 독립성을 위축시키면서 민주주의가 번영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옳지 않다.
용산 사건처럼 이념이 대립하고, 억울하게 죽은 자의 영혼이 떠도는 사건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우리는 진실을 모르기에 절차적 합리성을 구현하는 형사소송법을 엄정하게 적용하고, 그 가운데 밝혀지는 진실을 토대로 책임과 법을 우리 모두에게 확증시켜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소외된 사람의 아픔을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로 보듬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외된 자에 대한 관용의 마음은 법의 정신이기도 하다. 관용은 법치와 복지를 조화시키기 위해 민주국가가 해야 할 자기반성적 성찰의 시작이다.
이상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