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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황의욱]따개비, 말미잘의 비명

입력 | 2010-01-07 03:00:00


겨울 바다는 연인에게나 해돋이를 보려는 이에게 어김없이 잊지 못할 추억과 정취를 준다. 바닷가의 파도치는 검은 바위 위에 서서 부서지는 포말을 보노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하지만 겨울 바다에 바위나 파도보다 더 소중한 그 무엇, 바로 생명이 있음을 우리는 흔히 간과한다. 육중한 인간의 발아래 눌린 조무래기 따개비의 다급한 외침을 쉬이 듣지 못한다. 바닷물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바위 틈새에 만개한 꽃처럼 촉수를 펼친 말미잘을 쉬이 보지 못한다. 깊숙이 몸을 웅크리며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않는 바위게, 바위 아래에서 파도와 사투를 벌이는 담치, 삿갓조개, 뱀고둥, 비단군부를 보지 못하고 주황해변해면이 깔아놓은 카펫을 밟고 먹이를 찾아 나선 바다거미를 알지 못한다.

모두 한반도의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양 무척추동물이다. 지구상에 인간과 함께 공존하고 있는 이 소중한 생명에 대해 우리는 많은 경우 태무심하기 일쑤다. 그러다가도 식용이나 관상용, 또는 의약용으로서의 경제적 가치가 부각되면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갖는다. 아니 거의 편집증에 비견될 만한 집착을 보인다. 자연계에 서식하는 다른 생물에 대한 인간 중심적 사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자연의 무차별적 이용이나 생태계 파괴에 대한 자성과 경고의 목소리를 눌러왔다.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가 기후변화 및 생물다양성 국제협약을 1992년 채택했다. 한국을 포함한 193개국이 협약 당사국이다. 이 중 167개국이 국가적 차원의 생물다양성 보전 전략을 마련하여 적극 시행하는 중이다. 국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물다양성 보전에 대한 가시적 성과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1970년 당시보다 세계 생물다양성 지수가 오히려 31% 감소했다. 열대지역만 보면 59% 감소했다. 멸종위기종인 산호류는 15년 전보다 생존 가능성 지수가 20% 줄었고 양서류는 이미 30년 전부터 절멸의 위기에 놓여 복원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등록된 멸종위기종은 4만5000여 종인데, 이 중 2만여 종은 관리와 보전 대책이 절실한 상태이다. 유엔이 경인년 새해를 ‘국제 생물다양성의 해’로 지정한 것은 이러한 절박함과 시급함을 반영한다. 매우 다행한 일이다. 출정식을 11일 독일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에서 갖는다고 하니 모쪼록 올 한 해가 생물다양성 보전에 대한 국제적 인식 제고의 원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하지만 유엔과 정부의 노력이 구체적인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다른 생물에 대한 인류의 인식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인류는 생태계(ecosystem)를 구성원 중 어느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 시스템이 다운되는 ‘계(system)’로서 인식해야 한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룡의 멸종이 현화식물을 먹이 원으로 삼지 못해 일어났다는 흥미로운 가설에 따르면 일방적인 침엽수림의 포식자였던 공룡이 현화식물이 출현하면서 그 자리를 곤충과 포유류에게 내주었다. 현화식물의 꽃으로부터 꿀이나 수액을 취하고 화분의 수정을 매개해 주던 곤충이나, 과일을 먹고 씨를 온 사방에 퍼뜨려 현화식물의 번식을 돕던 포유류가 오늘날 지구상에 번성하게 된 현상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일방적 파괴나 포식이 아닌 ‘공존’의 지혜를 얻은 조상에게 준 자연의 선물이다. 경인년 한 해! 지구상의 다른 생물을 경제적 가치로만 재단하려는 인류의 오만함을 버리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으로 생각하는 공존의 지혜를 깨닫는 축복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황의욱 경북대 생물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