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한나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자 “예산안이 날치기로 통과된 이상 예산부수법안 상정은 무의미하다”며 개회 8분 만에 산회를 선포했다. 결국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사태를 막기 위해선 김형오 국회의장이 이들 법안을 직권상정해 처리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법사위의 기능은 각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들의 ‘법률적 문제’를 검토해 본회의로 넘기는 것이다. 국회법 37조는 법사위의 소관업무를 ‘법률안·국회규칙안의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에 관한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론 법사위가 법안에 대한 법률적 검토보다는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심사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 김 의장이 직권상정에 앞서 “여야가 상임위에서 합의 처리한 법안까지 법사위가 상정조차 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전문성도 없는 법사위가 부당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도 그래서다.
여당이 법사위 관문을 넘지 못한 법안을 처리하려면 국회의장을 통해 직권상정을 해야 한다. 비상상황에서 예외적으로 행사해야 하는 직권상정을 밥 먹듯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법사위 처리를 놓고 여야는 매번 옥신각신할 수밖에 없다. ‘다수결의 원칙’은 외면당하기 일쑤고, 폭력과 욕설이 등장하는 경우도 잦다. 정치권에선 “법사위가 의회민주주의의 질서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심지어 여권 일각에서는 아예 ‘법사위 폐지론’이 흘러나오는 실정이다.
의정 전문가들은 “미국 상·하원에도 모두 법사위가 있지만 우리 국회처럼 의회정치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다”고 지적한다. 법사위가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위원회로 거듭나지 않는 한 존립 이유에 물음표가 제기되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박정훈 정치부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