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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넘기지 말자” 유족 - 조합 - 정부 공감대

입력 | 2009-12-31 03:00:00

■ 용산 화재 참사 협상 극적 타결
○사태 해결 숨은 주역
鄭총리 취임 직후 현장 방문
吳시장-종교계도 적극 중재
○정부 ‘명분’ - 유족 ‘실리’
보상액 높이고 상가임대 양보
“불법 시위에 면죄부” 지적도




29일 서울 용산 철거민 화재 참사와 관련된 보상 문제가 극적으로 타결된 데에는 협상 당사자들과 정부 사이에서 “올해가 가기 전에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공사가 지연되면서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보고 있던 재개발조합, 사건 발생 345일째 장례도 치르지 못한 유족, 투쟁의 동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돌파구가 필요했던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 등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사고 책임자 처벌 및 사과 등의 부당한 요구는 단호히 거절해 명분을 얻고, 유족 측에서는 보상금을 받아내 실리를 챙긴 셈이다.》


사고 발생 직후 용산 4구역 재개발조합은 보상 책임이 없어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쪽이었다. 유족을 대표한 범대위는 정부의 사과와 다른 세입자들의 대체상가 보장 등을 요구하면서 협상은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졌고 올해 안에 타결이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8월 중순부터 직접 종교계 지도자들을 만나 협조를 구했고 서울가톨릭 사회복지회장 김용태 신부, 한국교회봉사단 사무총장 김종생 목사,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혜경 스님 등 3대 종교 대표가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지원 사격에 나섰다. 오 시장은 타결 직전인 29일에도 직접 조합장을 만나 협상 타결을 강력히 부탁했다.

정운찬 국무총리도 사태 해결에 큰 힘이 됐다. 그는 취임 후인 10월 3일 추석을 맞아 용산 분향소를 방문해 “사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과한 뒤 종교계 인사들과 잇따라 접촉했다. 한국교회봉사단 대표 김삼환 목사, 사랑의 교회 오정현, 덕수교회 손인웅 목사, 정진석 추기경, 수경 스님 등에게도 도움을 구했다. 정 총리는 최후의 카드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두 차례에 걸쳐 용산 참사 해결에 힘을 실어 줄 것을 간절하게 요청했고, 이 대통령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12월 중순경부터 협상은 막바지 국면으로 치달았다.

당초 재개발조합 측은 보상금 20억 원을 제시했고, 유족 측은 45억 원에 상가 임대를 요구하며 큰 견해차를 보였다. 하지만 양측이 요구 수준을 조금씩 양보했다. 재개발조합 측에서 상가 임대만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 보상금액을 35억 원가량으로 올리는 대신 상가 임대는 요구하지 않는 조건에서 협상이 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상금은 순천향병원에 지급해야 할 사망자 5인의 장례비와 시신안치비용 5억7000만 원, 유족 위로금, 세입자 보상금, 병원 치료비 등의 명목으로 지급될 예정이다. 참사 현장에서 진압작전 중 숨진 김남훈 경사의 유족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사망 조의금 등 명목으로 1억9600만 원을 일시금으로 받았다. 김 경사가 공무 수행 중 순직했기 때문에 유족에게는 매달 연금이 지급된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김 경사의 외동딸(8)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월 86만 원, 국가보훈처로부터 월 100만여 원 등 매달 186만여 원을 연금으로 받고 있다.

이날 당사자들은 ‘조합과 유가족 간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합의해 유족 등 세입자들과 재개발조합 간에 서로 제기한 각종 고소 고발은 취하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용산 참사 시위를 배후 조종한 혐의로 수배 중인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회 의장 등 3명이 처벌을 면하게 된 것은 아니다. 수배자 3명 가운데 박래군 이종회 용산참사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에 대해서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와 ‘일반교통방해 혐의’를 적용해 박 씨에게는 사전 구속영장이, 이 씨에게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이다. 남 의장도 용산 철거민 시위를 배후 조종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경찰은 이들이 출두하면 현행법에 따라 조사해 처리할 방침이다.

협상은 타결됐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섣부르게 보상금을 많이 편성하는 등 합의에 일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이 시위대에 사고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상황에서 보상금이 시위에 대한 면죄부나 보상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10월 28일 당시 화재를 일으켜 경찰관 등을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철거민 7명에게 징역 5∼6년의 중형을 선고한 바 있고, 당시 시위에 참여한 사망자 5명 중 3명은 용산 4구역과 관련이 없는 경기 용인, 수원시 등 다른 재개발지역 주민이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수배자 “자진출두”… 재판 영향줄 듯▼
용산 참사 관련 협상이 30일 타결됨에 따라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가 1년이 다 돼서야 치러지게 됐다. 또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와 유족들은 현재 점거 중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 남일당 건물에서 내년 1월 25일까지 철수하게 된다.

범대위는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합의안에 따라 유족이 내년 1월 9일 장례식을 치르고 사무실 등으로 사용했던 남일당 등 3곳의 건물을 25일까지 비우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일당 건물에 설치된 분향소는 당분간 유지된다. 범대위는 장례식을 치르더라도 용산 참사 1주년인 1월 20일까지 분향소를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수배 중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해온 박래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 등 3명도 장례가 끝나면 농성을 풀고 경찰에 자진 출석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이들은 ‘사태가 해결되면 농성을 풀고 경찰 조사를 받겠다’고 밝혀왔다”고 밝혔다.

참사 과정에서 경찰관 등을 숨지게 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혐의로 구속 기소된 농성자들에 대한 재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용산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충연 씨 등 농성자 9명은 10월 1심에서 모두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내년 1월 6일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이광범) 심리로 열리는 항소심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보상 문제가 타결되면서 이들의 형량에 참작할 만한 새로운 변수가 생긴 셈이다.

법원 관계자는 “유무죄를 가를 사실관계 판단과는 별 상관이 없다”면서 “1심에서 법정 모독행위 등으로 인해 더 엄한 판결을 받은 만큼 피고인들이 항소심에서 차분히 재판을 받는다면 합의를 전제로 선처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유족 “반쪽 타결”… 건설사 “돈으로 해결한 잘못된 선례” ▼
철거민과 경찰관 등 6명이 숨진 용산 참사 문제가 발생 1년 가까이 해법을 찾지 못하다가 30일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되자 철거민 유족들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345일간 끌어온 문제가 타결돼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유족들은 안도하면서도 이번 합의는 ‘반쪽짜리’라며 아쉬움을 보였다.

장례를 치르고 보상이 이뤄지더라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숙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용산 참사 문제 해결을 위해 물밑 노력을 기울여 온 국무총리실과 서울시는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연내 협상 타결을 봐 다행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30일 “많이 늦었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이 문제를 매듭짓게 돼 참으로 다행스럽다”라며 “이런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총리로서 책임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유족 여러분께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오세훈 시장은 “용산 참사 이래 서울시장으로서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라며 “유가족의 비통함을 이제 조금이나마 풀어드릴 수 있게 돼 다행스럽고 앞으로 재개발, 재건축 등의 사업과정이 원주민과 세입자 보호는 강화하면서도 사업은 신속하게 추진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도록 제도 보완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한편 유족에 대한 보상 액수가 35억 원이라는 소식을 접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돈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 같다”며 “잘못된 선례를 남긴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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