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당첨돼 압구정 이사간 3남매강남 살지만 여전히 이방인일 뿐욕망의 끝에 남은 건 ‘살인의 추억’
크리스마스트리와 화려한 조명, 신나는 캐럴과 멋진 선물…. 하지만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성탄절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대책 없이 들뜬 분위기는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시킨다. 어딜 가나 사람이 넘쳐 뜻하지 않은 시비나 싸움,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일도 드물지 않다. 최근 개봉한 영화 ‘걸프렌즈’의 원작자 이홍 씨의 신작소설 ‘성탄 피크닉’은 이런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은영, 은비, 은재 세 남매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을, 사상 최악의 크리스마스가 닥쳐왔다. 살인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강남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 상류계층의 욕망, 위선 등을 주로 그려온 이 씨는 이번 소설에서 ‘강남 사회’에 진입한 서민 가족의 삶을 들여다본다. 로또 한 방으로 경기 성남에 살다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 한양아파트로 단번에 입성하게 된 은영이네 가족. 하지만 이들의 행로는 순탄하지 않다. 아빠는 로또 당첨 뒤 당첨금 일부를 챙겨 엄마와 이혼하고 집을 나갔다. 엄마는 살길을 찾기 위해 홍콩의 딤섬스쿨에서 유학 중이다. 어쩔 수 없이 대학 졸업을 앞둔 첫째 은영이 동생들을 돌보며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로또에 당첨된 한 서민 가족의 파란만장한 압구정동 진출기를 그려낸 소설가 이홍 씨. 사진 제공 민음사
책을 덮은 뒤 의문도 남는다. 정말 세 남매는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을까.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강남으로 상징되는 주류 사회에 진입하고자 하는 욕망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될 수 있을까. 쓰러진 최 원장을 집에 결박해 둔 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이 일을 의논하는 세 남매의 모습은 희극적이면서도 상징적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