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못 다 쓴 이야기 ①
“여기, 잘 되고 있다고 말할 사람 있나 한 번 찾아봐!”
얼마전 영화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제작자가 주변을 돌아보며 한 말입니다. “잘 되시죠?”라며 안부 인사를 묻자 그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엄살이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면 실제로 올해 환한 웃음을 내보인 제작자들의 얼굴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병은 또 다른 병을 몰고 왔고, 좋아하던 술 담배를 끊고 건강을 챙기기에도 바빠 보였습니다. 좋은 기획과 참신한 영화 만들기의 본업은 그렇게 멀어져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작비를 투자받기 위해 투자배급사가 제시한 불리한 수익금 분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던 제작자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 결과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정작 제작사가 가져갈 몫은 적었습니다. 심지어 몇몇 제작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 제작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아픔에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잘 쓴 시나리오로 인정받았지만 톱스타가 캐스팅되지 않아서, 스타 감독이 연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지어 실체가 보이지 않는 어떤 외부적인 요인으로 제작을 포기해야 했던 그들에게는 아무런 위로의 말도 보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2009년을 보내는 한국영화계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해운대’가 1000만 관객을 불러모았고, 다른 몇몇 영화들도 ‘대박’의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영화들은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하며 관객의 기억속으로 사라져갔습니다. ‘워낭소리’와 ‘똥파리’, ‘낮술’ 등 독립영화가 의외의 선전으로 다양한 영화 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한 건 그나마 작은 위로이기도 했습니다.
참신한 영화를 만드는 숙명은 결국 제작자의 것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예전보다 더 까다로운 투자 분위기가 빚어낸 상황에 열패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도, 아니 기대보다 흥행하지 못해도 제작자들이 내년엔 더욱 힘을 내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운명과도 같은 영화 만들기에 투자배급사와 극장, 관객 모두가 응원해주길 소망합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