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픔에 빠진 柳林마을
유림마을 주민들이 사라진 유림숲을 그리워하며 2002년 5월에 세운 ‘마을수호 유림 신조비’. 경주=이권효 기자
노인 17명이 참사를 당한 경북 경주시 황성동 유림(柳林)마을 주민들은 2002년 5월 마을 앞 형산강변에 높이 2m인 ‘마을수호 유림 신조비’를 세웠다. 수백 년 된 울창한 숲이 10여 년 전 마을 앞 강변을 따라 생긴 넓은 도로 때문에 사라진 아쉬움을 담은 비석이다. 비문의 마지막 문장 끝에는 글을 지은 최영원(73) 박병룡 씨(79)의 이름이 나란히 쓰여 있다. 유림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두 사람은 이번 참사로 함께 목숨을 잃었다. 유림노인회 회장인 최 씨의 부인 이금자 씨(68)도 함께 변을 당했다.
비문에는 유림마을 주민들이 유림숲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잘 드러나 있다.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어머니의 따뜻한 품 속 같던 유림숲. 현대화의 답답한 물결이 할퀴고 간 초라해진 지금의 숲을 바라보는 아쉽고 그리운 정에 가슴 저미는 감회를 금할 길 없다…수백 년 된 팽나무, 왕버들, 회나무, 녹개나무가 2만5000m²였고 강에는 황어와 은어, 연어가 철따라 오르고 다슬기는 지천으로 널렸다. 소달구지에 실어온 음식을 먹으며 경주시민들이 즐기던 숲이었다.’
비석에서 강변을 따라 100여 m 떨어진 곳에는 ‘유림 제단’이 있다. 비록 숲은 사라졌지만 마을주민들의 마음에는 살아있는 유림숲을 그리며 마을의 안녕을 위해 제사를 모시던 장소다. 제단 앞에는 한그루 신목(神木)이 서 있다. 마을 총무 손진생 씨(62)는 “어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모두 모여 장례를 도왔는데 합동장례를 지내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느냐”며 “한꺼번에 마을 어른들이 유림을 떠나 남아있는 주민 모두 상주(喪主)가 된 심정”이라고 말했다.
경주=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