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머폭력 세계적 망신 반성없이
민주당 의원들이 1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의 위원장석을 점거하고 심재철 예결위원장 등 한나라당 의원들을 막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이시종 의원이 위원장석에 앉아 있다. 이날 국회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부주석은 회의장 밖의 소란만을 목격했다. 이종승 기자
전 세계에 ‘부끄러운 격투기 국회’의 오명을 떨친 지난해 12월 18일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의 해머, 쇠지렛대 소동 이후 1년. 폭력과 업무거부 등으로 2009년을 점철해온 한국 국회가 결국 연말 예산안 처리를 놓고 다시 물리적 충돌의 악순환으로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간의 3자 회동이 추진되고 있지만 여야는 결국 대화와 타협의 묘를 살려내지 못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9시 시작된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이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원회를 단독으로 구성하는 안을 의결하려 하니 실력으로 저지하자”는 방침을 정한 뒤 곧바로 예결위 회의장 점거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은 전날 정몽준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으로 모처럼 되살아나는 듯했던 협상의 싹을 무시한 채 계수소위 일방 구성 방침을 강행하려 했다. 한나라당 소속 심재철 예결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예정대로 회의를 진행하겠다”며 위원장석에 앉으려 했으나 민주당 의원들에게 저지당했다.
▼ 시진핑 지나가는데 북새통… 끝없는 망신살 ▼
단상서 쫓겨난 위원장 17일 민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실 위원장석을 점거해 회의 진행이 어려워지자 심재철 위원장(아래 왼쪽)이 한나라당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종승 기자
양당은 장기전 태세에 돌입했다. 한나라당 안 원내대표는 이날 소속 의원들에게 ‘해외출장 자제령’을 내렸고 민주당 의원 20여 명은 예결위 회의장에서 밤샘농성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18일부터는 조(組)를 짜 ‘예결위원장석 지키기’에 나서기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유엔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19일 귀국한 뒤 3자 회담에 어떤 견해를 내놓을지에 따라 국회 대치 상태는 휴전이 될지, 확전이 될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17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예결위에서 처리해야 본회의에 상정할 것이며 직권상정은 하지 않겠다”며 “특히 예산안이 연내에 처리되지 못하면 국가위신 추락과 국민의 비판 등에 대한 모든 책임은 사실상 이를 막은 쪽이 전적으로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회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도 소란을 목격했다. 오전 9시 15분경 국회에 도착해 본관 3층 접견실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을 만난 시 부주석은 9시 50분경 김 의장의 배웅을 받으며 국회를 떠나면서 예결위 회의장 앞을 지나갔다. 그곳엔 여야 당직자와 기자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회의장 안의 몸싸움 장면이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국회 관계자는 “시 부주석이 ‘무슨 일이냐’고 묻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