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방대’ 동행 취재기어묵 등 미끼에 백신 넣어 너구리 등 이동길목에 살포예방약 총 2만5000개… “집에 가져가지 마세요”
○ 북한산-양재천 등에 ‘미끼 백신’
등산을 하던 오 씨가 가로 5cm, 세로 3cm 크기의 ‘미끼 예방약’을 하나 꺼냈다. 코끝에 가져가자 어묵 냄새가 났다. 오 씨가 예방약 표면을 벗기고 잘라내자 작고 하얀 비닐용지가 나왔다. 용지 겉면에는 ‘Rabies Vaccine(광견병 바이러스 백신)’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 씨는 “야생동물이 어묵 냄새를 맡고 이것을 먹으면 자연스레 백신 접종을 받는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라며 “용지 속 빨간색 액체가 바로 광견병 백신”이라고 말했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 옆에 서울대 수의대 야생동물의학실 연구원들이 비닐봉투에 넣은 광견병 미끼 예방약을 내려놓았다. 사진 제공 서울대 수의대 야생동물의학실
서울시와 서울대 수의대는 서울을 둘러싼 산과 하천을 따라 미끼 예방약 2만5000개로 ‘광견병 방어선’을 촘촘히 구축했다. 북한산, 도봉산 등지와 남쪽의 양재천, 탄천 등 야생 너구리가 다닐 만한 길목에는 어김없이 미끼 예방약을 뿌렸다. 야생 너구리가 자주 등장하는 우거진 숲이나 물이 풍부한 계곡 능선도 방어선 구축에는 안성맞춤. 오 씨와 김 씨도 이런 지역을 골라 반경 100m마다 1곳씩 정해 예방약을 30개씩 뿌린 뒤 나중에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수신기에 입력해 뒀다. 이날 오 씨가 손에 든 GPS 수신기에도 어김없이 예방약을 뿌린 지역이 좌표로 찍혔다.
○ “들고 가지 마세요”
이들은 너구리가 겨울잠을 자는 12월에 예방약을 회수해 회수율을 분석한다. 이달 7일부터 1주일간 회수에 나선 결과 2만5000여 개 중 1000여 개만 남은 것으로 나타났다. 너구리가 겨울잠에서 깨며 식욕이 왕성해지는 2월에는 다시 한 번 방어선 구축에 나선다. 오 씨는 “너구리나 야생동물이 사라진 예방약 모두를 먹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일단 이렇게라도 방어선을 구축해 놓아야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