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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입력 | 2009-12-12 03:00:00

아버지를 찾아나선 아들
아들을 거부하는 아버지
불편한 관계의 이면 파헤쳐
억압-결핍 등 진지한 성찰




◇ 한낮의 시선/이승우 지음/160쪽·1만 원·이룸

 종교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소설로 형상화해 오며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해온 소설가 이승우 씨. 이번 신작에서 작가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탐구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같은 지붕 아래 있는 아버지보다 그렇지 않은 아버지가 훨씬 억압적이다. 왜냐하면 같은 지붕 아래 있지 않은 아버지는 온 우주를 자신의 지붕으로 삼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승우 씨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작가는 이번에 발표한 신작 소설 ‘한낮의 시선’에서 역시 인간에게 숙명적으로 지워진 억압과 결핍 등 관념적인 주제들을 성찰한다. 인문학의 오랜 주제인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통해서다. 버림받은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통해 억압과 집착, 두려움을 떨치고 내면적 성숙을 이뤄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스물아홉 살의 대학원생인 나는 폐결핵에 걸려 한가로운 외지에서 요양하던 중 은퇴 후 이곳으로 온 한 대학교수를 알게 된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 교수와 대화를 하던 중 주인공은 지금까지 자신이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두려움과 집착을 갖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단 한 번도 아버지를 궁금해했던 적이 없다. 굳이 그의 존재를 떠올릴 필요가 없을 만큼 경제적, 정서적으로 전적인 헌신을 다했던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좀처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결핵균에 감염된 그는 그 병균만큼이나 해묵고 오래된 문제인 ‘아버지’란 벽에 부닥친다.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의식의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그의 꿈이나 환영 등은 마음 한편에서 간절히 아버지를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그는 아버지를 찾아 한 도시로 떠난다. 휴전선 근처 인구 3만의 작은 도시. 이름도 알지 못했던 그의 아버지가 농장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는 곳. 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 도시로 모여든다. 하지만 내게는 도리어 죽기 위해 모인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테의 수기’ 한 구절을 떠올리며 자문한다. “도대체 나는 그곳에 살려고 가는 것일까, 죽으려고 가는 것일까.”

그의 여정은 순탄치 않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의 젊은 청년은 쉽게 아버지의 이름을 대지도, 그가 운영하는 농장에 찾아가지도 못한 채 여인숙이나 거리를 전전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의 농장은 성역처럼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더구나 어렵게 찾아온 아들에게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아버지는 고작 이런 말을 건넨다. “타이밍이 좋지 않다. 있을 만하냐. 언제까지 있을 건가.” 아들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아버지를 보며 아들은 깨닫는다.

“아버지들은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한다. 사랑은 아버지들의 권리이거나 의무이다.…그러나 아들들에게는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권리나 의무가 없다. 사랑하는 아버지든,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든 다를 바 없다…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찾는 자, 찾도록 운명지어진 자가 아들이다. 아들만이 바위산과 갈대숲과 선인장 밭과 끓는 사막을 통과하며 찾는다….”

작가는 후기에 “의식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아주 예민해지자고 작정했었다”며 “모퉁이를 돌면 부딪칠 것 같은 알 수 없는 존재, 부딪치기를 바라는지 바라지 않는지도 분명하지 않은, 초월이며 내재인, 미지의 큰 시선과 웬만큼 친해진 것 같긴 하다”고 썼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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