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제조일자, 우유시장 판도 뒤집다우유 들었다 놓았다…고객행동 자세히 관찰“생산 즉시 출하” 선언게임의 규칙 바꿔
서울우유는 유통기한과 제조일자를 함께 표시하는 마케팅을 전개해 고객 만족도를 향상시키고 시장의 경쟁 구도를 바꿔놓았다. DBR 사진
서울우유가 흰 우유 제품에 표기한 이 몇 글자가 시장에 지각 변동을 불러왔다. 소비자 관점에서 이런 변화는 사소해 보인다. 몇 글자를 추가로 찍은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아비즈니스리뷰(DBR)의 전문가 설문 결과, 서울우유 마케팅은 시장의 경쟁 구도를 바꾼 성공 사례로 꼽혔다. 제조일자 표시 마케팅을 주도한 서울우유 노민호 마케팅본부장과의 심층 인터뷰, 각종 자료 조사를 토대로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 아이디어의 원천은 고객 관찰
하지만 소비자들은 신선함 추구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서울우유는 잘 알고 있었다. 업체마다 유통 기한이 달랐기 때문이다. 유통 기한이 똑같이 10일 남았더라도 바로 어제 생산된 제품도 있고 5일 전에 생산된 제품도 있었다. 따라서 제조일자를 표시해주면 소비자들은 쉽게 신선한 우유를 고를 수 있다.
○ 조직 내부의 거센 반발
제조일자는 유제품 생산 업체의 기밀 사항 중 하나였다. 회사 내에서는 “현재도 제품이 잘 팔리고 있는 데다 고객들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굳이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제조일자를 밝혀서 출고된 지 오래된 제품의 경쟁력을 스스로 떨어뜨릴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됐다.
특히 생산과 유통 담당 부서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업무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이었다. 신선도 측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생산 시간대는 새롭게 날짜가 바뀌는 자정부터다. 자정부터 오전까지 최대한 많은 양의 제품을 생산해야 유통점에 신선한 우유를 배달할 수 있었다. 휴일에도 공장을 가동해야 했다. 야근과 휴일 근무의 강도가 대폭 강화될 것이 확실시됐다.
마케팅팀은 소비자 조사를 통해 이런 반론을 잠재웠다. 실제 조사를 해보니 5일 지났다는 정보가 알려지더라도 제조일자를 밝혔기 때문에 더 신뢰할 것이란 응답 비율이 80%에 달했다. 결국 제조일자를 표시하기로 최종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졌고 ‘생산 즉시 출하, 도착 즉시 판매’라는 슬로건하에 조직 구성원들의 인식과 행동이 변해갔다.
○ 게임의 규칙 변화
서울우유 마케팅은 시장의 경쟁 구도를 바꿔놓았다. 일부 우유업체는 유통 기한 연장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 유통 기한을 늘리면 더 오래 제품을 팔 수 있기 때문에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서울우유의 마케팅으로 시장의 경쟁 구도는 출시 후 제품을 얼마나 빨리 공급하느냐로 변했다. 유통 기한 연장에 대한 투자가 의미를 찾기 어렵게 된 셈이다.
서울우유는 구매 현장에서 소비자들이 ‘신선도’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이에 따라 마케팅 담당자들은 제조일자 표시가 고객들에게 가치를 준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됐고 이를 토대로 내부의 반발을 극복했다.
김남국 기자 march@donga.com
김상훈 서울대 경영대 교수 profkim@snu.ac.kr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정지용(25·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박진영(22·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인턴연구원이 참여했습니다.
※ 이 기획 기사의 전문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7호(2009년 12월 15일자)와 홈페이지(www.dongabiz.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