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델리 등 비교, 도시경쟁력 찾죠”
‘식민도시의 공간·정치·문화 비교사 연구회’ 회원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인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만든 식민도시를 연구한다. 회원인 박진빈 경희대 교수, 민유기 광운대 교수, 기계형 한양대 연구교수, 김백영 광운대 교수, 김종근 고려대 대학원생, 최용찬 연세대 강사, 이향아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생(왼쪽부터)이 인도 올드델리와 뉴델리 지역 사진을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재명 기자
도시중심의 현대까지 틀 남아있어
측량-도시계획 따른 도시경관 조성
강제 철거 일변도 개발문화 낳아
“인도 뉴델리에서 구도심과 신도심을 구분 짓는 그린벨트는 토착민들의 주거지에 사는 모기가 영국인들이 사는 신도심까지 날아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식민도시 설계에서 위생관념은 그만큼 비중 있는 위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김백영 광운대 교수)
“서양인이 지배한 다른 식민도시와 비교해보면 일제강점기 경성(서울)은 일상사에서 구분이나 격리가 덜한 편이었습니다. 인종적 구분이 쉽지 않은 특성 때문에 생긴 결과로 사료됩니다.”(김종근 고려대 지리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 식민도시를 통한 도시사 연구
이 연구모임은 서울 부산 목포 등 일제강점기에 재개발된 국내 식민도시와 뉴델리(인도) 카사블랑카(모로코) 마닐라(필리핀) 타이베이(대만) 홍콩(중국) 싱가포르 등 서구 제국주의 식민도시들을 비교 연구하고 있다. 식민지 문화가 응집된 도시를 연구함으로써 식민주의에 대한 이해를 넓힘과 동시에 국가 간 무역장벽이 낮아짐에 따라 도시 중심의 경쟁력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도시 자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목적이다.
김백영 광운대 교수(역사사회학)는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식민도시 간의 네트워크가 현재에도 그대로 살아서 도시 경쟁의 토대를 이룬다는 점에서 식민도시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모임의 주제는 △식민도시의 일상사를 통한 식민주의 이해 △문화 교류 공간으로서의 식민도시에서 이뤄진 다양한 혼종성 △바람직한 도시 구조를 찾는 열쇠로서의 식민도시 내 공간구조 △세계 각지의 식민도시 비교 연구를 통해 일국의 역사 연구로 해결되지 않던 국가발전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 등이다.
이향아 씨는 “해외 식민지가 팽창하면서 영국에서는 새 전문직종이 늘어났는데 토지측량사 의사 건축가 도시계획가 등이었다”며 “식민도시의 도시경관을 주도했던 이들은 탈식민지 시기에도 여전히 공간의 계획 및 구상에 맥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창조적인 도시 구축을 위한 도시계획을 서구의 몇몇 전문가 그룹에 자문하는 아시아의 도시가 많은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해석이다. 의사들이 도시경관에 미친 영향도 컸다. 위생관념을 강조하면서 토착민과 식민개척자의 주거 공간을 분리할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김 교수는 “토지측량사와 도시계획가에 의한 일방적인 도시 재건은 오늘날에도 남아 강제철거 일변도의 개발 문화를 낳았다”며 “이런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고유의 전통을 살리는 재개발의 발전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모임이 결성된 배경에는 역사를 자국 중심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을 벗어나야 한다는 인식도 한몫했다. 민유기 광운대 교수(프랑스 현대사)는 “우리 학계의 식민지 시기 도시사 연구가 수탈론과 근대화론이라는 이항대립적인 교착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비교사적인 거리두기가 필수”라며 “이에 뜻을 같이하는 연구자들이 모여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등 식민도시를 만든 국가들의 식민도시 정책 전체를 연구해보자고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박진빈(경희대·미국 도시사) 김예란(광운대·영국 문화이론) 강성률(〃·식민시기 영화) 문수현(서울대·독일 일상사) 김승욱(서울시립대·중국 개항도시) 유승희(〃·한국 근대도시) 등 전공 분야가 다양한 학자들로 이뤄졌으며 앞으로 폭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민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식민도시에 대한 비교사적 연구는 미지의 땅으로 남아 있다”며 “앞으로 2∼3년간 연구의 심도를 높여 학술논문은 물론이고 일반인을 위한 대중서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