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상처받은 것이다
그가 밝힌 과세 이유를 보면 열 받거나 맥 빠질지 모른다. 간단히 말해 수입 있는 곳에 세금 있기 때문이란다. 사이버테러가 걱정되지도 않는지 프린스턴대의 두 여교수는 2006년 논문에서 “1인치 더 크면 수입이 1∼2% 더 는다”며 키가 클수록 똑똑해서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염장을 질렀다. 갤럽의 웰빙지수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올해 나온 논문 ‘꼭대기의 삶: 키의 이득’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TV 오락프로에서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는 여대생의 발언에 왜 그리 이 땅의 남자들이 분노했는지, 외모 차별 방송을 노상 겪고 살아온 여자들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내가 남자라면 어땠을까. 내재적 접근법으로 머리를 싸맨 끝에 얻어낸 해답이 경제난 속의 역린(逆鱗·임금의 노여움)이다. 용의 턱 아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노해 건드린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 안 그래도 사는 게 팍팍하고 남자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판에 잘난 여자까지 대한민국 대부분의 남자를 루저로 몰아가니 상처받은 자존심이 폭발한 거다.
키로 말할 것 같으면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게 우리의 오래되고도 익숙한 정설이었다. 180cm가 넘는 한 남자는 “그들은 초중고교 시절 키 순서대로 줄서면서 피해를 본 탓인지 사회에선 죽기살기로 위너가 되더라”고 했다. 그런데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엔 키가 크든 작든 어떤 능력도 보여줄 수 없으니 스트레스가 안 쌓일 리 없다.
미국의 포린폴리시 7·8월호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미국 실업자의 80%가 남자이고 세계적으론 2800만 명의 남자가 실직했다며 ‘마초(남자다운 남자)의 죽음’을 선언했다. 특히 세계화의 ‘마초 루저’는 결혼도 어렵다며 이제 이데올로기도, 문명도 아닌 남녀의 충돌이 글로벌 갈등의 축이 될 거라고 겁나게 예측했다.
여자는 차라리 ‘잡놈’이 그립다
미국이나 우리나 남자는 생활비의 3분의 2 이상을 대는데 여자가 가사노동의 3분의 2 이상을 한다고 불평등을 외치는 건 솔직히 앞뒤가 안 맞는 얘기다. 군 복무 의무까지 다하고도 무능한 정부와 유별난 교육열에 아이들과 아내를 영어나라로 보낸 뒤 ‘돈버는 소’처럼 사는 우리나라 남자들은 더 불쌍하다. 그렇다고 불만을 드러냈다간 남자답지 못한 ‘찌질이’로 찍히니 환장할 노릇일 터다.
마초의 수난시대는 영국도 예외가 아닌지 최근 더 타임스는 “남자다움의 가치가 훼손되면서 공격적이거나 용렬한 남자가 는다”며 남자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되레 여자가 괴로워진다고 했다. 이런 게 약한 여자가 강한 남자를 은근히 조종하는 기술이라고 장 자크 루소도 ‘에밀’에서 일러준 바 있다.
그래서 이제부턴 세상의 남자들을 모두 오빠라는, 자지러질 듯 상큼하고 든든한 이름으로 부를 작정이다. ‘오빠! 이렇게 불러주고 나면/세상엔 모든 짐승이 사라지고/…//오히려 두둑한 지갑을 송두리째 들고 와/비단 구두 사주고 싶어 가슴 설레는/오빠들이 사방에 있음을/나 이제 용케도 알아버렸기’(문정희 시 ‘오빠’)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들도 알아야 할 게 있다. 아무리 양성평등사회를 강조하고 법과 제도를 구비해도 ‘여자들은 누구나 마음속 깊이/야성의 사나이를 만나고 싶어 하는 걸’(‘다시 남자를 위하여’) 말이다. 공인도 아닌 젊은 처자의 말 한마디에 뒤집어지는 남자들보다는 ‘불꽃을 찾아 온 사막을 헤매이며/검은 눈썹을 태우는/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을 여자들은 그리워하고 있다. 어쩌면 나랑 문 시인 둘만 그럴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