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차례 교전 모두 대화 분위기서 발생 왜?
《북한이 최근 미국, 한국과의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는 상황에서 서해 무력도발을 한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미국과 북한은 지난달 뉴욕 실무접촉을 통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북에 합의했다. 남북 관계도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갖는가 하면 인도적 대북 지원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참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과거에도 지금과 비슷한 ‘대화국면’에서 1차(1999년 6월 15일), 2차(2002년 6월 29일) 연평해전을 일으킨 일을 상기하면 북한의 이번 해상 도발이 무엇을 노리는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1차 교전 직후 ‘평화보장체계’ 요구해 성과
이번에도 협상력 강화-내부 결속 노린 듯
○ 대화국면 조성한 뒤 도발
2차 연평해전이 일어나기 전인 2002년 4월 30일에도 북-미는 양자 대화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7월 10일 방북하기로 예정된 상태였다. 임동원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별보좌역은 그해 4월 초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2001년 이후 소강상태에 빠졌던 남북관계를 복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4월 28일부터 5월 3일까지 제4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고 정부의 대북 비료 20만 t 지원도 이뤄졌다.
○ 도발 후 대외 협상 전술로 활용
북한은 무력도발에 따른 긴장 분위기를 이후 대미, 대남 협상에 활용했다. 한반도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 상태이고 서해가 군사적 분쟁지역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상대방에 협상 의제로 삼을 것을 압박하는 전술이었다.
북한은 1차 연평해전 직후인 1999년 6월 2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보도를 통해 “미국과 남측이 정전협정 이행을 포기했다”며 “북-미 간 ‘평화보장체계’가 수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1년 뒤인 2000년 10월 북-미는 “한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꿔…”라는 내용의 공동 코뮈니케에 합의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북한은 이번에도 미국, 한국과의 대화에서 협상력을 키우는 동시에 ‘대화 국면’에 대한 내부의 이해와 단결을 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